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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알고 삽니다

옛 선배를 대면하기 미안함에 피합니다.

2025년 새해의 첫 번째 주입니다.

이제 정년이 1년도 안 남아있네요. 이렇게 하루, 그리고 한주가 줄어드는군요.



오늘도 집에 있느니 운동을 겸하여, 인근에 있는 도서관으로 발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아침부터 제법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책을 읽고, 어떤 이는 랩탑이나 태블릿으로 무언가 하고 있고, 어떤 이는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네요. 저도 자리를 잡은 후 태블릿으로 영어 딕테이션(Dictation, 받아쓰기)을 할 생각입니다.

잠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우연히 눈에 띄는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한눈에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4년 전에 조기 명퇴를 하신 선배 분입니다.

당연히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드려야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 선배를 생각하면 아픈 생각이 먼저 납니다.



제가 A팀 팀장에서 바로 옆 B팀 팀장으로 이동을 하면서, 업무 이관을 받은 것 중 하나가 '역량 향상 대상자 관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좋은 말로 '역량 향상 프로그램'이지, 사실은 조기 퇴직을 시키기 위한 회사 나름의 방안입니다.


주로 정년이 가까워지는 일반직 고임금자 중 고과가 낮은 직원을 선정하여, 역량을 향상한다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을 하고 있지만 조기 퇴직을 시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일 뿐입니다.

대상자로 선정(?)되신 분들은 팀장이 매일 대상자의 업무 태도를 체크하고, 주어진 업무를 적기에 제대로 수행하였는지 평가를 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조기 퇴직시키기 위한 명분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지요.


제가 팀장으로 부임하고 보니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라고 할까요.

회사는 전임 팀장을 통해, 이 분을 조기 퇴직시키기 위한 상당한 자료를 이미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제명조치를 결정하는 인사위원회 개최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이제 몇 군데 빠져있는 자료를 채우는 일과 인사위원회 참석을 통한 증언(?)과 같은 일이 저에게 할당되었습니다. 전임 팀장이신 분이 다른 것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에게 정말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해외주재원으로 떠났습니다. 너에게 큰 부담을 지운다면서요.


아픈 기억, 부끄러운 기억

이제 옆에서 감시하듯 대상자의 일일 근무 태도를 체크하고, 평가 사이트에 정보를 입력하였습니다.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오직 사내망에서만 접속할 수 있는 사이트이기 때문에, 반드시 퇴근 전에는 입력을 해야 했습니다.


또한 수행한 업무에 대한 평가 결과도 입력을 해야 했습니다.

보고서 작성은 제대로 되었는지, 무엇이 부족해서 수정을 하게 되었고, 수정한 결과는 만족스러웠는지...
업무를 진행하면서 미흡한 점은 무엇이었고, 그 이유는 어떤 것이었는지...
업무의 종료가 팀장이 정한 기간 내 완료가 되었는지, 안 되었다면 무슨 이유인지, 그 품질 수준은...


이와 같이 역량 향상 대상자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지켜보며 평가를 했습니다.



인사청문회 참석 시간이 다가 올 수록 점점 신경은 날카로워집니다.

무슨 법원에 참석한 증인이 하는 것처럼, '역량 향상 대상자'에 대해 설명하라는 것이지요.

주로 안 좋은 쪽을 강조하여 설명하기를 원하면서요.


한 2~3번 정도 참석하였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각도 하기 싫고, 떠오르는 것 모두가 마음을 아프게 만듭니다.


결국 대상자는 회사에서 쫓겨나는 해고보다는, 회사의 사직권고를 받아들여 권고사직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퇴직 시 불이익 적어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회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무리가 되었네요.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돌이켜 보면 참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역량 향상 대상자의 선정을 인사에서 하였으면, 인사에서 모든 일을 수행하고 마무리지었어야 합니다.


만약 팀장에게 이런 부담을 지우려면, 팀장이 대상자를 선정하는데 관여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팀장한테 '대상자의 유지' 또는 '대상자의 해지'에 대한 권한도 주어져야 마땅합니다.

명색이 '역량 향상 프로그램'이라면 대상자의 역량이 향상되었을 경우에는, 대상자에서 제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팀장의 판단 및 책임 하에서...


살면서 후회할 일이 많았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후회할 일은 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부끄럽지는 않도록 살겠습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살면서 후회할 일이 많았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후회할 일은 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부끄럽지는 않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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