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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의 발전을 응원합니다

거친 원석이 다듬어져, 숨겨진 예쁜 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D-279)

제가 실장일 때 모두 5명의 신입사원을 직접 면접을 통해 뽑았습니다.

2년 여 기간 동안 5명의 신입사원이 온 경우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기록이라, 저 나름대로는 저의 업적(?)중 하나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다섯 번의 신입사원 채용 때문에 제 생각에는 약 30명이 넘는 피면접자를 만났습니다.

그중에서 단연 '군계일학(群鷄一鶴)'인 신입사원이 제가 부족하나마 현재 업무를 도와주고 있는 친구입니다.

통상 면접을 보다 보면 대부분의 피면접자는 회사와 모집 업무에 대한 정보, 자기의 의지나 열정에 대해 잘 준비하고 들어옵니다. 하지만 좀 깊은 질문이나 두어 가지 사항을 연결하여 물어보면 당황하거나 아예 이해를 못 해, 엉뚱한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첫 질문에 이어 추가 질문 그리고 심층 질문에 대해서도, 큰 어려움 없이 답변을 하였습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당면하거나 미래에 닥칠 어려운 상황에 대한 해결방안을 물어봤을 때도,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자기 나름의 정립된 생각을 조리 있게 설명하더군요.

저뿐만 아니라 같이 배석했던 팀장들과 인사담당자 모두 최고점을 주었고, 당연히 합격을 했습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신입사원이 바로 그런 부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사 후 자신의 업무를 빠르게 습득하고, 나아가 점점 깊게 파고드는 모습을 보입니다.

회사에서 뿐 아니라 퇴근 후 기숙사에서도 계속 업무와 연관된 공부를 하는 모양입니다. 이러다 보니 2년 차부터는 선배들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었고, 일부분은 추월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런데 모든 게 좋을 수는 없듯이, 이 친구도 약간만 고쳤으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워낙 타고난 머리도 좋은데 자기 계발을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는 타입이다 보니,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넘어 경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족한데도 노력하지 않는 선배들을 '회사 돈을 축내는 존재', '상대할 가치가 없는 존재', '직장 내 좀비'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저도 속으로 그런 생각을 가끔 하곤 했지만, 이 친구는 강박증이 있지 않나 생각할 정도로 심하더군요. 당연히 이런 태도가 밖으로도 표출되면서, 선배들은 '건방지다', '싹수가 없다', '주제넘다'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후배사원들에게도 "업무에 대한 열의가 없다", "이런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냐"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봅니다. 후배들이야 그냥 수긍하거나 웃어 넘기기는 하는데, 당연히 표정이 좋지는 않겠지요.


옆에서 지켜보니 흔히 말하는 '젊은 꼰대'입니다.



업무를 지원하다 보니 이 친구랑 같이, 일할 기회가 자주 있습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똑똑한 것은 인정하는데, 매우 거칠다는 겁니다.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굽히지 않고 불만사항을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니, 듣는 사람이나 상대방에게 불편한 감정이 생기게 합니다. 이런 빈도가 많아지니 팀장이나 일부 선배들 사이에서는, 부딪치려 하지 않고 피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이 친구를 볼 때마다 저희 아들이 생각이 납니다.

나이도 비슷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비슷해서 가끔 아들 얼굴과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이런 태도가 앞날에 걸림돌이 될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요.


그냥 두고 보면 안 될 것 같아서 커피 한잔 마시거나, 술 한잔할 때마다 몇 번에 걸쳐 제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어쩌면 '조언'이 아니라 '충고' 또는 '지적질'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끼는 후배라 솔직한 생각을 전달했습니다.


"정말 똑똑하고 일도 잘하는데, 조금 더 생각하고 한 걸음 물러섰다가 나가는 법도 배워야 한다"
"무조건 싸워서 이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타협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 하지 말고,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아라"
"모두가 너와 같지는 않다. 여건이나 상황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 나와 다름을 인정할 필요도 있다"


자신도 자신의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데,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역시 똑똑한 친구는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관용구가 있듯이, 쉽게 변하지는 않더군요.

아마 10여 회 정도 동일한 이야기를 했고, 이중 2~3번은 감정이 상할 정도로 좀 강하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이 친구도 진급을 해서 올해부터는 대리가 되었습니다.

능력을 인정해서 제가 있을 때 조기 진급을 신청했었는데, 결국 진급연수를 꽉 채우고 나서야 진급한 게 좀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즈음 여러 회의가 있어서 같이 참석해 보면 좀 나아진 쪽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협력업체와 업무 전반에 대한 협의 과정(진행 우선순위에 대한 결정, 업체 간 이견 발생 시 조율하는 방식, 요구 비용에 대한 협상 등)에서 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비해 좀 부드러워졌네요. 투덜대거나 따지거나 하는 등의 불안감이 적어졌고, 상대방의 입장도 나름 고려하고 배려하는 등 정제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전 회의 때만 해도 회의 중 제가 끼어들어 정리를 하거나, 방향을 잡아주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당사자간 첨예한 안건이 포함된 회의도 차분하게, 하지만 일관된 방향으로 유도하며 진행하는 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문제가 되거나 조율이 안 되는 상황이 아닌 이상, 제가 불필요하게 끼어들 필요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즐겨보는 TV 프로그램 중 '아웃백 오팔 헌터'라는 미니시리즈가 있습니다. 광산에서 흙벽을 허물면서 오팔을 찾는데, 깨어진 돌들 중 소수에서 오팔의 색이 아주 살짝 보입니다. 이 돌을 자르고 연마하면 어느덧 다양한 색상의 오팔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가장 비싸다는 '블랙 오팔', '크리스털 오팔'부터 저렴한 '커먼 오팔'까지...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수준을 갓 넘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다듬다 보니 숨겨져 있는 진가가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부드럽고 유연함 속에서 강함을 느껴지게 할 수 있을 때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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