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글] 그냥... 좀 화나서

결정적 순간엔 훼방꾼이 하나 있다는데

by 겨울아이

살다보면 결정적 순간엔 꼭 훼방꾼들 한 명은 찾아온다는데, 내 인생은 그 훼방꾼이 족히 10명은 넘게 있던 것 같다. 특히, 한 번씩 오는 게 아니라 떼로 몰려서 훼방 놓고 사라지는, 책임 없는 쾌락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1. 어릴 때부터 외갓짓 4형제 중 내가 제일 동네북이었다고 생각한다. 제일 패기 만만해서 그랬겠지. 무슨 일만 터지면 난 막내니까 어쩌구. 가장 어릴 때부터도 기억나는 건 외할아버지가 분명 나보다 1살 어린 사촌 동생이 있음에도 내가 제일 막내니 어쩌구... 그때 그나마 제정신이었던 엄마가 그 사촌 얘기를 해도 걔는 빼야지... 이 소리.


난 이제 신앙심을 거의 버린 무신론자지만, 내 외갓집은 극단적 개신교 집안이다. 명절 모임 때도 매번 가족 예배... 같은 이상한 걸 시도하는데. 아무튼, 아까 말한 내 사촌 동생들은 자기는 하기 싫다고 도망쳐도 냅두던 외할머니는, 내가 성인이 되고 신앙을 잃었다고(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코로나 시기 중국을 향한 심판, 이딴 개소리 지껄이던 목사를 보고 굳이 내가 믿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고.) 하자마자 나를 향해 화내는 할머니를 보고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가족 예배 안 나온다고 해도 나한테 압박 주면서 지랄하던 건 덤.


편입하기 이전, 편입 공부를 해도 된다는 엄마의 말에 문제집을 들고 간 내가 천천히 수학 문제를 푸는 걸 보고 할머니는 갑자기 '요즘 TV에 나오는 애들은 밑줄 짝짝 그으면서 하는데 넌 왜 안 그러냐'라는 말을 하셨다. 솔직히, 자신이 불리한 건 '난 몰라' 하고 자신이 '훈수' 둘 수 있는 건 나를 타겟으로 잔소리 하는 게 일상이 된 외갓집을 더 가고 싶지 않다.


2. 이젠 어엿한 연세대 대학원 최종 합격까지 받은 대학원생으로, 내가 그래도 범인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다만, 제일 분노가 치솟아오르는 때는 다음과 같다.


참고로, 내 합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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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단순히 태엽 장난감을 보고 팔을 돌리며 돌려달라고 어필한 형을 보고 '천재'라고 호들갑 떨던 가족들의 눈과 다르게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거두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에 맛들려 중학생 때는 항상 최상위권에 들고, 선생님들의 실수까지 짚어낼 정도였으니. 그랬던 내가 정말로 원한 목표는 '물리학자'였다. 초등학생 6학년부터 과학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싶었고, 선행학습까지 몰래 이어가던 도중, 가족들은 왠지 모르게 일단 순조롭게 과학고등학교 진학을 지지해줬고, 난 그렇게 중학교 3학년까지 성적을 최상위권으로 유지하며 그 꿈을 이루고자 했다.


물론, 갑자기 엄마의 '과학고등학교는 영어로 수업한다'라는 괴상한 발언과, '사촌 중에 과학고등학교 가서 적응 못해 일반고 간 사람 있다'라는 겁을 주면서 지원조차 하지 못하게 막은 게 결말이었지만. 생각해 보자, 왜 사람들이 '과학고'를 가고 싶어할까? 영어로 수업하고, 뒤쳐지더라도, 일반 고등학교보다 더 좋은 시설, 지원, 그리고 학습을 해서 그 누구보다도 엘리트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그럼에도, 난 지역 최상위 자공고를 들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사실, 그럴만도 한 게 내 엄마는 수능이 거의 첫 시작됐을 때 세대로,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인서울 들어갈 수 있던 시기의 고등학생이었을 텐데 정작 지방 전문대를 들어가서 제대로 졸업조차 하지 못했다. ㄱㅊ대학교라고, 지금은 4년제로 바뀌었지만 전국 최하위 순위를 기록하는 대학교 말이다. 그곳에서 치기공과를 나와 제대로 졸업조차 하지 못한 엄마가 가진 식견과, 학업, 진로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릴 때, 내가 형의 성적을 치고 올라가던(사실 치고 올라가기도 정말 쉬웠다) 때에 엄마, 할머니, 이모가 형 기죽지 않게 적당히 하라고 했다. 아니 시발 지금 생각해 봐도 좆같은 게 내가 그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기죽고, 이제 와선 형이 ㅎㅌㅊ 삶 사니까 나한테 달라붙어선 떼먹을 거 없는지 뒤지는 게 제일 개씹 같다.


아무튼, 솔직히 이룬 업적이라곤 시골에서 주는 상장 몇 장 밖에 없는 집안에서 내 성장을 이렇게 막은 건 종종 생각해 봐도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일이다. 제대로 크지 못하게 밟아놓고 와선, 이젠 자기들이 키운 지분 내놓으라고 하는 좆같은 인생.


3. 최근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나를 다시 알아가는 과정 중,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내가 애정결핍이 심했던 것이었다.


사실, 이젠 선임 누나가 더 좋다. 엄마보다도, 내 가족보다도 더 먼저 지키고 싶은 대상이다. 물론, 누나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기에 연인으로서 지키고 싶다는 게 아니라, 동생으로서, 그리고 견습생 위치의 후배로서. 친구에게 장난으로 한 말은 '우리 연구실 최대 복지는 누나 보는 거'라고 할 정도다.


어제도 대학원 MT 때문에 내가 편곡한 곡 보내주니까 누나가 웃더니 너무 귀엽다고 해서 너무 좋았다. 어쩌면... 정말 이 누나가 내 친누나였으면 맨날 누나한테 충성 다하고, 장난도 많이 치고, 힘들 땐 도움도 주고, 종종 앵겨서 놀아달라고 했을 텐데.


만일, 누군가 나에게 인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일을 묻는다면, 똑똑하지 않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일, 이라고 하고 싶다. 누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 나와 다른 삶을 잘 살아온 지인들의 부모님을 보면 다들 번듯한 직장과 학벌,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가족을 화목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들이 보였으니까.


가끔은 내가 누나 동생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쓰담쓰담'으로 알려진 '나데나데'도 자주 받고, 누나 옆에서 재잘거리는, 그런 귀엽고 활기찬 책벌레 동생으로 태어났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최근 들어 자주 떠오를 뿐이다.


굳은 얼굴의 리더십 강한 누나랑, 활기찬 책벌레 동생의 조합으로 살았다면... 이라는 망상이 멈추질 않는 2025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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