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내가 먼저 병원에 실려가겠네
내가 장대하게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의학물리학을 연구하는 초초초 엘리트 괴짜 천재' 같은 수식어를 스스로에게 붙였지만 사실 그렇게 대단한 걸 아직 시작하지 않았기에. 가끔은 내가 무언가 한 것 같아 뿌듯해도 칭찬해준 교수님과 누나의 반응은 '아직 발걸음도 떼지 못했다'와 같은 말이니, 이젠 내가 얼마나 가엽고도 작은 존재인지 알겠더라. 힝... 아무튼, 가장 중요한 건 그럼에도 다음엔 무엇이 있을지, 큰 그림을 그리고, 기다리면서 포기하지 않는 마음.
아무튼, 난 학교 과목인 '캡스톤 디자인'에서 원래 '장기 AI 분석'과 같은(제대로 된 논문 제목을 붙이면 내 신상이 특정되니 그건 피하겠다.) 주제를 골랐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헤헤 난 그래도 정말 이런 직접적인 역할 안 하겠지'라는 환상은 깨지고 결국 내가 그 연구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아마, 교수님께서 일부러 심어둔 큰 그림일 것이라고 믿는데도 내가 공부한 것과 직접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달라서 개발자로서 자괴감을 수십번 느낀, 어쩌면 나에게 있어 통곡의 벽이 아니었을까 한다. 사실, 어찌 저찌 무언가 해야 한다는 건 알아도 오류가 뜨면 절망감을 느끼고 일어서서 발만 동동 구르는 나이기에...
재밌는 얘기를 하자면, 난 코드를 짜고 돌릴 때 실패할까봐 걱정되어 일어나 모니터를 주시하는 버릇이 있는데, 교수님께서 혼자 저녁에 남아 그렇게 발만 동동 굴리는 나를 보고 왜 의자에 앉지 않고 서있냐고 물으셨다... 어 음... 하는 마음으로 설명드리니 진짜 어린 애기 보는 듯한 교수님 표정을 보고 자괴감과 창피함이 섞였지만, 아무튼 '갭모에 어필'은 성공한 게 아니었을까. 지금은 그래서 뭘 하고 있냐면...
이런 걸 직접 뽑아내 보는 중이다. 간단히 말해, 신체 분리쇼를 코드로 간단하게 실행하도록 설계하는 거다, Wow! TotalSegmentator라는 오픈소스 프로그램을 통해(사실 CLI 기반이라고 했을 때부터 설마 내가 직접 코딩해야 하는 건가... 라는 쎄함을 느꼈지만) 딥러닝 정보와 같이 저런 식으로 장기들을 분해해주는 매우 고마운 코드이다. 이게... 중요한 점은 무료라는 것, 그리고 은근 기능도 많고 정확도도 꽤나 높다는 점.
우리 연구실은 이것에 집중해보는 편이라고 보면 되겠다. 다만, 이것만 하는 게 아니라 더 나아가 '암 예측 프로토콜'과 같은 예측 연구를 진행하기에, 어쩌면 이것도 매우 매우 매우 작은 연구의 일환이 아닐까. 난 이런 연구를 하고 있다... 정도를 뽐내고 싶었던 나의 잡글. 사실, 오늘은 이 Contouring을 fine tuning하는 작업을 했는데 왜 이리 마우스는 뻑뻑하고 손은 내 말을 안 따르고, Slice 수는 뭐 이리 많은지... 선임 누나도 한 시간에 한 케이스를 할 정도라고 하니 익숙하지 않은 나는 얼마나 또 갈려야 할까...
살려줘 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