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P였던 내 시절
지금은 극극극 IN과 더불어 수시로 바뀌는 T/F와 J/P를 갖고 있는 나, 내향 중 내향, 그리고 망상꾼 중 망상꾼으로 여겨지는 나에게 있어 만약에 되돌아 가고 싶은 성격이 있냐고 묻는다면... 아마 중학생 1학년 때로 돌아가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 그때는 정말 그 누구보다도 ENTP 같은 성격에, 여우 같은 아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장난을 좋아한 때니까.
초6 때인가, 은근 신기한 담임 선생님을 만나 뵙고 나서부터, 나는 '참신함'이라는 단어에 꽂혀 그야말로 '잡스병' 말기의 학생이었다. 내가 먼저 이론을 제시하기도 하고, 별 이상한 발명품을 꿈꾸기도 했으니까. 초등학생 때부터 이어진 학교 폭력이 끊기고, 내가 중학교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지, 하는 바람으로 오히려 외향적으로 나갔던 것 같았다(물론, 같이 올라온 초등학교 일진 무리가 그걸 막아세우긴 했지만.). 내가 무언가 '창작'한다는 것에 꽂힌 게 아마 이 중1 때부터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문학적으로도, 당시 담임 선생님이셨던 국어선생님이 중학생의 감성이 아닐 정도라고 나를 칭찬하실 정도였으니.
물론, inherited된 내향성이 튀어나올 때마다 '그래도 이겨내야 내가 바뀌어'라는 생각으로 아둥바둥 살아갔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담임 선생님께서(졸업 후 임용고시 한 번에 합격한 엘리트 출신 선생님인데다, 성격도 좋고 외모도 좋아서 모든 학생에게 인기가 많았다.) 학생들에게 무조건 1번씩 해야 하는 상담에 데려갈 때도 장난으로 '끌려간다, 살려줘!'라고 복도에서 소리칠 정도였으니. 선생님이 당황하지 않을 정도로 선생님께도 자주 장난을 치던 그런 기억이 남아 있다.
어릴 시절, 나를 한 단어로 정리하면 '여우'. 꾀도 많고, 기발한 발상은 덤에, 권력자 밑에 붙어 빌빌 내 몫은 챙기는 그런 이미지가 없지 않아 있었다. 물론, 점점 일진들이 '정치질'로 나를 인기 있던 아이들로부터 떼어낼 때까진, 그런 생각을 했지만... 매우 안타까운 건, 지난 번에도 말했듯이, 내 학군은 정말 좋지 않은 학군이었다. 중학교도 특목고 한 번을 못낸 그런 학교였고. 그런 탓에, 단순히 자신 서클이 아닌데 성적은 좋고, 선생님 모두와 하하호호 하는 모습이 고깝게 보였을 그들이 슬슬 내 주변을 포섭하며 나를 고립시켰으니까.
재밌는 건, 그걸 주도한 한 학생의 후일담을 아는데, 대학생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가는 길에 오토바이를 타고 자장면 배달을 하는 그 친구, 팔에는 문신이 잔뜩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짠하기도 하면서, 직업 비하는 아니지만, 그가 '공고'에 가기 위해서라도 중3 때 나한테 정말 귀찮을 정도로 도움을 요청한 게(거절하고 싶었지만, 담임 선생님께서 나에게 부탁하셨다.) 무색할 정도로 그곳에서도 개판인 인생을 산 친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그런 여우 같은 학생이 이렇게 갑자기 북극으로 향한 건, 내 학군 뿐만 아니라, 집안 사정 덕이라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한 마디로, '쟤 왜 저렇게 나대냐.'. 거짓말이 아니라, 내 엄마가 내가 없을 때 직접 외할머니께 한 말이다. 난 분명 그 말을 들었음에도 다시 뭐라고 했는지 물었을 땐 발뺌 하던 엄마는 덤. 우리 집안은 '뒷담'으로 태어나, '뒷담'으로 이어져, '뒷담'으로 끝나는 집안이었다. 내가 명절 때마다 외가에 가기 싫어하는 대표적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난 내 주변이 잘 되면 부러움은 부러움 뿐이고, 그 사람으로부터 '배워야겠다', 라는 생각부터 드는 사람이다. 지금도, 내 고등학생 동창2(이 친구는 고등학생 때 별명이 '한파고'였으니, 이제부터 한파고라고 부르겠다.)으로부터 배워 '학부연구생'이라는 걸 처음 알았고, 그 친구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고, 내가 한참 슬럼프였을 땐 내가 그 친구와 너무 비교가 되고, 오히려 그 친구에게 '부족한 사람' 취급 받을까봐 먼저 연락을 끊으려고 했으니. 아무튼, 난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영향'을 받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내 외가는 정말로 다르다.
어린 시절, 외가에서 내가 남달리 공부를 진짜로 잘 하는 아이였을 때(내 지금 중앙고를 간 9살 터울 동생을 제외), 외가의 손주들 중에선 제일 공부를 잘 하던 아이였다. 그럼에도, 칭찬이나 질문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네 형이 압박감 느끼지 않게 조절해 봐라' 같은 개소리였다. 왜 내가 형의 눈치를 봐야 하는지, 그리고 칭찬은 없고 시발 내 재능을 그렇게 깎아내리는지, 난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 놓고, 막상 재능을 발휘할 때는 그런 말 한 적 없다는 듯이 '잘 해봐' 같은 소리나 하고 지랄인 곳.
방금 말한 9살 터울 동생의 어머니, 즉 '외숙모'께서는 교육열이 강하신데다, 홍콩 노스페이스 대리...셨던가, 아무튼 매우 높은 자리에 계신 분인지라 학벌도 제일 좋으시고, 매우 현명하고 자유로운 분이시다(ESTP라고 하셨던가...). 아무튼, 차라리 난 외숙모가 어머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자식 교육에 신경을 쓰시는 분인데(계속 까내릴 내 이모는 지 자식이 말을 안 듣는다고 가족들 앞에서 멱살을 잡고 방으로 간 사람이다.) 자공고를 간 나에게 질문을 많이 하시기도 했고, 지금도 편입이라든지, 공부와 관련해선 나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신다. 나도, 그 탓에 동생에게 자주 조언을 주거나,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문제를 같이 풀어주는 중이다.
반면, 이모라는 작자는 외숙모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건지, 명절 때마다 틀린 지식 대잔치를 벌인다. 예를 들어, '음양오행의 오행은 한민족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거라, 음식에도 그 색이 보인다', 라고 하는데 오행은 중국의 문화이다. 미역을 먹으면서 '한국인만 미역을 먹는다' 같은 소리를 하다가, 해외 지식이 당연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은 외숙모께서 '일본, 아일랜드, 스페인에서도 먹는다'라는 소리를 하니 조용해지더라. 하긴, 예전에 나에게 이모의 이(姨)가 두 이(二)라고 주장한 사람이니. 도대체 뭔 말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두 이+어미 모면... 두 명의 엄마, 말고 뜻이 되나?
외숙모께서는 영어로 일을 하시고, 베트남인 직원들에게도 영어를 가르치시는 분이라, 영어에 정말로 능숙한 분인데 '히든싱어' 방송을 보다가 '히든'이 자신이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는 거리라 그런지 'hide'의 과거분사형이라고 하다가 외숙모가 '그게 뭐' 하는 반응을 보이시니 조용해지더라.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선 난 그냥 의도적으로 피해다니는 중이다. 얽혀서 좋을 거 1도 없는 사람 같아서. 참고로, 이모의 자식들은 모두 마이스터고를 나와 근무 중인데, 그렇게 성격이 둘 다 좋은 편은 아니라 나도 명절 때 그냥 외숙모의 아이들과 노는 편이다.
이러한... 그냥 복잡한 학군 이야기와 가정의 압박으로, 나는 솔직히 아직도 내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많이 없는 상태이다. 웃긴 건, 이렇게 기를 죽여놓고, 이제 와서는 왜 자신감이 없냐고 나에게 묻더라. 이 병신 새끼들. 지금이야 '다시 시작'이 되는 상태라 누나랑 교수님 상대로 장난도 치고 조금씩 ENTP스러움이 살아나고 있지만(심지어 그 ESTJ 교수님이 나보고 말이 많아졌다고 하셨다.) 이게 긍정적인 면으로 살아나지면 좋겠다.
여우는 그렇게 북극으로 향해, 눈이 자박, 자박, 쌓이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가, 뛰어놀던 그곳의 따스함이 그리워져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