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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호 Oct 05. 2024

형이 결혼했다.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오늘 아침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해 큰누나와 함께 동대구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몇 분 먼저 도착한 동생과 역에서 합류해 부모님이 혼주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날씨가 굉장히 좋았다.


"결혼하기 좋은 날이네. 맞제." 누나에게 말했다.


샵에서 부모님과 합류해서 다시 예식장으로 이동했다. 예식장으로 이동해 혼주 대기실에서 잠시 쉬었다가 신부 대기실 앞에서 드디어 형을 만났다. 무엇을 향한 긴장과 두려움인지는 나로서는 막연했지만, 형은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형의 그런 떨고 있는 얼굴을 보니 나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했다. 


"형아 긴장했네?" 나는 눈물을 터뜨리려고 하는 감정을 흘려보내고 형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형은 정신이 없어 보였다. 


신부 대기실에 들어가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기품 있게 앉아 있었다.

'신부라는 존재는 벅차고 찬란하구나.'

마찬가지로 무엇을 향한 것인지 나로서는 막연했지만, 형수는 어떤 충만한 감정으로 방 안을 압도하고 있었다. 꽃들과 큰 나무 문, 여러모로 아름다웠다.   


가족들이 다 같이 사진 촬영을 했다. 나는 사진가가 요구하는 자세를 잡은 채로 얼굴에는 미소를 지었다. 지난 1년 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사진을 많이 찍어서 다행이다. 나는 웃는 모습으로 누군가를 축복해야 할 순간에 알맞게 웃을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사진 촬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을 때, 이제 축의대로 가야 한다고 누가 나를 불렀다. 


사람이 없는 세상, 10년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혔던 내가 형의 결혼을 축복하러 온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을 해도 되는 걸까? 나는 두려웠다. 


축의대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결혼식을 다니면서 본 적도 없다.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고, 단지 안 해본 일이기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다행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매형이 든든했다.   


나는 하객분들에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밝게 인사하고, 축의금 봉투를 받아 번호를 적고 방명록에 이름을 적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식권을 나눠드렸다. 주차권, 식권, 답례품 등 몇 가지 당황스러운 변수도 생겼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잘 대처했다고 생각한다. 


결혼식은 보지 못했다.


누군가 한 명이 이 일을 하느라 성혼의 순간에 함께하지 못한다면 그래도 남매 중 내가 그 역할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아주 못 미더운 인간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이 집 차남이니까. 겁이 나서 떠넘길래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각하는 하객도 뜸해져서 봉투를 정리하고 있는데, 결혼식 마무리로 사진 촬영을 한다고 이번엔 식장에서 나를 불렀다. 신생 부부와 우리 가족들이 이미 전부 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양복 재킷 단추를 잠그면서 얼른 뛰어갔다. 가운데에 서있는, 식을 마친 듬직한 형을 바라보면서 축하한다고 말하고 어깨를 주물러줬다. 지금 알아차렸는데 내 사랑의 표현은, 내가 누군가의 존재를 향해 내 응원과 사랑을 전하고 싶을 때 나는, 어깨를 주무르는 것 같다.


다시 한번 카메라를 향해 웃으면서 사진을 찍고 나는 먼저 나와서 매형과 함께 축의대 정리를 했다.  




결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된 후로는 처음 맞는 가족의 결혼식이었는데, 예식에 함께 참여를 못한 것이 참 아쉽긴 했다. 그래도 축의대에서 역할을 함으로써 이 과정에 동참했다고 생각했다. 


대기하고 있을 때도 그렇고, 축의대에 있을 때도 그렇고, 끝나고 식사를 할 때도 그렇고 친인척분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내가 다시 살기 시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비루한 인생이지만 나는 당당했다. 또 내 나름대로는 이것저것 복잡하지만, 다들 나더러 얼굴이 좋아졌다고들 말씀하시니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돌아올 때는 한 시간 정도 내가 운전을 해서 집으로 왔다. 운전, 좋아하는 것 같다. 서울에서 운전하는 건 어떨까 싶은데, 나중에 서울에서 운전할 일도 생기면 알게 되겠지 하고 생각한다.


아빠가 만든 자두 와인, 캠벨 와인, 피자두 와인을 순서대로 연거푸 마시고 있다. 아빠는 아무래도 시골에서 맘에 드는 취미를 찾았나 보다. 술을 자꾸 찔끔찔끔 가져다주는 아빠에게 "이 정도로는 안 취한다고 더 갖다 달라고, 아빠가 만들어줄 때 많이 먹어야지" 하고 말했다. 아빠는 짧게 웃으면서 와인을 뜨러 간다. 참- 많은 것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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