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앱에 들어오면 광고가 뜨기도 하고, 카톡으로도 광고가 왔었기 때문에 팝업 전시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딱히 가볼 생각을 하고 있던 건 아니었는데 한 청년이 같이 가시겠냐고 물어봐오니 생각을 해보게 됐다.
"혼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같이 가면 여러모로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청년 뒤에 연결돼 있을 친구를 피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 사실을 늘 속 시원하게 드러내지 않는 청년에 대한 모호한 찜찜함도 편치는 않았다. 그리고 나도 배출로 시작한 글쓰기이지만 전시장에서 나를 불러줬던 것처럼 내가 정말 이미 '작가'라면, 글쓰기에 관련해서 혼자서 오롯이 내 경험과 감정을 생성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온갖 힙쟁이들이 거니는 골목들을 지나서 토로토로 스튜디오에 도착하니 텍스트힙쟁이들이 모여 있었다. 힙쟁이들 간의 분위기의 차이가 재밌다고 생각하면서 줄을 섰다. 나는 안내를 해주시는 분이 종이로 된 입장팔찌를 채워주면서 쓰레기를 바닥에 뿌리는 것을 유심히 봤다. 그걸 2초 이상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면서 입장을 한 후 브런치 작가용 워크북을 받고,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 카드를 발급받았다. 목에 거는 형태가 아니어서 그걸 받는 게 큰 의미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구경을 어느 정도 한 후 통로 쪽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서 워크북을 작성했다. 질문들에 답을 해보면서 나에 대해서, 글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잊고 싶은 뭔가가 있냐는 질문에는 갑자기 내 잘못으로 아주 어린 여동생에게 트라우마를 만들어버린 것이 생각났다. 나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용기가 없어 그 망설임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무거운 죄책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니, 좀 났다.
같은 테이블에서 워크북을 작성 중인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갑작스레 감정적이 된 것이 난처해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고 있으니 한 사람이 보였다.
순간 모든 것이 조용하게 느려졌다. 오브제를 하나씩 만져보는 손, 글을 살피는 표정, 내가 쳐다보고 있는 건 안중에도 없는 듯한 집중한 모습이 보였다. 그 사람은 나처럼 쉽게 감정적으로 오르락내리락 들뜨거나 가라앉지 않았다. 최소한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고요하게 자신의 내면에만 집중해서 사유하고, 팝업 전시장에 전시된 브런치 작가들의 책을 읽어보거나 글감을 둘러보면서 자신의 구상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아.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 있자 복잡하고 힘든 마음들이 한순간에 걷히면서 생각이 단순해졌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 뭔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기쁨이 찾아왔고 20km 달리기를 끝냈을 때처럼 세상 문제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됐다. 그 후로는 예정에도 없던 물살에 뛰어들어 그대로 몸을 맡긴 채 잠시 둥둥 떠 있었다.
그건 나한테 좋은 일이었다.
작가가 어떻고 글쓰기가 어떻고 솔직히 쥐뿔도 모른다. 그런 곳에 있을수록 그냥 나는 빈껍데기일 뿐인 데다 흉내도 어설픈 천치라는 것만 분명해질 뿐이다.
그래도 이날 내가 팝업 전시장에서 확실하게 얻은 것은, 전시장에서 만난 질문들을 통해서 솔직한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