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오빠 10/9에 뭐 해" 동생한테서 10월 7일에 카톡이 왔다. 나는 학교 간다고 대답했다.
"아하 학교 가는구나.."
독립문 쪽 안산자락길을 아침에 갈 거라며 동생은 덧붙여 말하는데 나는 동생의 어지러운 마음을 알기에
"아하 같이 갈까? 도서관 근로는 휴일이라서 없을 듯." 하고 말했다.
10월 9일 수요일, 독립문역 5번 출구로 나와 동생을 기다렸다. 9시 7분이었다. 이때 날씨는 아마 올 1년 중에서 이보다 나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동생의 연애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내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안산을 올랐다. 정말 소소한 가족 간의 일상적인 대화일 뿐이었지만 그런 '일상적인' 일이 펼쳐지고 있다는 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다.
"왜 연락을 잘 안 했는데?"
"보고 싶다는 말 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동생은 대단하다며 웃어버렸다.
봉수대에 도착해서 아빠가 동생 편으로도 줬던 샤인머스캣 한 송이를 먹었다. 그리고 내려와서 연희동 맛집을 가서 맛있게 식사를 했다. 카페도 가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었다. 동생에게서 책도 한 권 빌렸다. 학교를 가기 위해 내가 먼저 카페를 떠나면서 동생과 헤어졌다. 이 네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에 동생과 나 사이에는 서로 신경 거슬리게 하는 말이나 행동이 전혀 없었다. 그러기 위해 노력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랬다. 내가 조금 어른스러워졌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다. 그저께 아침도, 어제 아침도, 오늘 아침도 그랬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마침 읽고 있는 책이 떨어진 시점에 추천받은『명상록』에서 본 문구를 생각했다.
이른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을 때에는,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다.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을 싫어해서야 되겠는가? 내가 창조된 목적이 이렇게 이불속에 누워 따뜻이 지내기 위해서였단 말인가?"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라.
너무 빡빡한 인생인 것 같긴 하지만 어차피 편하게 있으면 남는 건 후회밖에 없다는 걸 알아버렸으니 그냥 저 말을 듣기로 했다. 일어나서 기숙사 헬스장 가서 운동을 했다. 역시 그 편이 낫다. 운동을 다 하고 계단으로 토끼뜀을 하면서 올라가는데 4층쯤에서 술 취해서 자고 있는 학생을 발견했다. 기숙사 열세 달 생활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뭔가 대학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재밌었다. 깨울지 말지 고민은 했어야 될 것 같은데 전혀 그런 고민은 하지 않고 지나쳤다. 굉장히 편하게 잘 자고 있어 보여서 그랬을까.
샤워를 하고 방을 나서서 천 원에 제공되는 학식을 먹고 출근을 해서는 또 평범한 일과를 했다. 해결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여전히 도서관 단톡방에서는 알림이 오지 않는 상태인데, 그래도 오늘은 다행히 두 번의 호출을 모두 놓치지 않았다.
오늘의 모든 수업을 마치고는 책임경영에 관해서 AI에게 물어보면서 과제를 했다. 약간의 질적인 아쉬움이 느껴져서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관련된 아무 논문이나 하나 찾아서 읽었다. 그러니까 곧바로 잠이 왔다. 9시밖에 안 됐는데 그냥 자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또『명상록』에서 본 문구를 생각했다.
고통을 겪을 때마다 다음과 같이 생각하도록 하라. 그것은 수치가 아니며...(중략) 고통에는 그 한계가 있으며, 상상으로 그것을 과대평가만 하지 않으면 고통은 결코 참을 수 없는 것도 아니며,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들, 말하자면 아주 졸립다거나 매우 덥다거나 혹은 식욕이 없다는 등도 고통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라.
나는 졸렸으니까 "아주 졸립다거나 하는 것도 고통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했다. '참을 수 없는 게 아니며 잠깐 아주 졸렸다가 지나간다는 거겠지.' 그랬더니 정말 졸음 기운이 가셨다.
책 내용을 너무 미시적으로 적용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국소부위에 사용하는 마취약처럼 요긴하게 써먹었다. 읽자마자 생활에 써먹을 수 있는 책이라는 건 그 책이 대단한 책이기 때문일까.
오늘은 오렌지 레몬 나무 열매 하나가 색깔이 살짝 밝아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혹시 노란색이나 주황색으로 넘어가고 있는 시기일까. 변하는 중에는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변하고 나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게 불투명한 나날이지만 오늘도 나름대로 근면성실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