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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호 Oct 20. 2024

#고등학교 (2)

나의 다름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얼굴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 집 6남매 중에서 여드름이 나는 종자는 나뿐이었다.


어릴 때 얼굴이 나쁘지는 않았다. 막 좋지는 않았어도 피부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여드름이 심하게 나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3학년부터는 아래턱이 발달함과 동시에 수염자국도 푸르러지기 시작했다. 여동생과 같이 재밌게 빌려봤던 만화 속 '블루'가 돼버린 것. 여러모로 이른바 '역변'이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은 점심시간에 농구부 연습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 녀석이 울퉁불퉁 여드름으로 붉게 뒤덮인 내 얼굴을 보고 "아, 징그럽다."고 했다. 나도 내 얼굴이 보기가 징그러울 때여서 납득이야 됐지만, 모두가 쉬쉬하던 속마음이 입 밖으로 노골적으로 나오는 것을 직접 듣는 것은 엄청난 상처였다. 그리고 친구들과 낯선 곳을 다닐 때도 친구들의 태도가 어딘가 예전과는 달라진 것을 느꼈다. 내 옆을 기피하는 것 같았다.  


이 시점부터 아마 자존감과 다르게 그나마 있던 자신감마저도 바닥을 치기 시작했던 것 같다.


2학년 여름 전까지만 해도 여드름이 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징그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때로는 나한테 장난으로 얼굴을 비비는 친구에게는 "여드름이 옮는다."면서 놀리곤 했는데 그때 그 말을 들은 친구의 표정이 떠오른다. 웃고는 있었지만 떨떠름하다고 해야 할지, 입술이 티 안 나게 비죽 나온다고 해야 할지 하여간 불편한 것을 감추고 태연한 척하려고 나올 때 지어지는 그런 표정들 중에 하나였다. 내가 여드름이 많이 난 것이 그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라는 신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많이 했다. 그리고 덕분에 확실히 이해를 하게 된 것도 다. 내 스스로가 티비에서 여드름 약 광고만 나와도 흠칫흠칫 할 정도로 피부가 고민인 사람이 되어 봄으로써, 피부만이 아니라 체중이라던지 키라던지 다른 사람이 콤플렉스일만한 것들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괜찮은 일이다.


다른 친구들도 종종 여드름이 심하게 나는 녀석들이 있었다. 몇몇은 피부과를 다니면서 손쉽게 바로 수습을 하기도 했다. 나도 원 이야기를 안 해본 것이 아니지만 아무래도 형편이 좋지 않았어서 그런지 부모님은 "금방 지나갈 거다, 괜찮아질 거다." 류의 말씀을 하셨다. 다른 친구들 집처럼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 문제를 돈이 없어서 해결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야 하는 것이 좀 많이 힘들었다. 피부트러블이 생기면 다들 그냥 평범하게 피부과를 다니는 것 같았고(내 눈엔), 나는 그 평범의 범위에서 벗어나있다는 짜증과 원망이 있었다. 


밤늦게 4인실 기숙사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다가 얼굴이 너무 가렵고 아플 때 가족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었던 기억이 있다. 누나로부터 뭔가 성에 차지 않는 서운한 답변을 받았던 어렴풋한 기억이 난다. 가족 중에서도 나만 여드름쟁이다 보니 공감받기도 쉽지 않았다. 밤에는 공부 스트레스로 감각 자체가 과민해지기도 하지만 특히 피부 감각이 예민해져서 유독 트러블의 형태 질감이 크게 느껴지는 것도 힘들었다.


대학가서는 피과도 다녀봤지만 이미 외모 자신감 하락으로 굳어진 행동패턴이나, 대인기피증 비슷 성격까지는 잘 회복되지 않았다. 내가 히키코모리 생활을 한 데에는 조금 어이없을 수 있지만 이런 외모에서 기인한 심리적 이슈도 컸던 것 같다.


비교적 최근, 첫째 조카가 어느 정도 인간적으로 성숙한 자아를 갖추기 시작한  8,9살이었을 때 일이다.


"기쁨아, 왜 엄마 형제들 중에 엉클만 이렇게 얼굴에 뭐가 날까?"

"엉클이 특별해서 그렇지요." 조카는 1초만 생각하더니 나한테 저런 말을 해줬다.


미운오리새끼 이야기를 알기 때문인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인지.


참 쉬우면서도 참 답이다 싶었다.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은 위로와 감동을 느꼈다. 인터폰이 달려있는 벽 앞에서 나를 향해 처음으로 걸어오던 것을 보던 순간만큼.


다른 것들보다 조카의 그 말 덕에 이제 뭐 그렇게 크게 피부 때문에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한다. 내가 참 조카를 잘 키우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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