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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호 Oct 26. 2024

#고등학교 (3)

나의 다름은

10대 후반의 내가 느꼈던 나의 '다름'에 대한 이야기의 마지막으로, 이번엔 부끄럽지만 용기 내서 내 죄를 고백해보려고 한다. 늘 하고 싶던 이야기였지만 생각보다 오래 미뤘다. 친구라 불러도 괜찮을지 모르겠는 한 미안한 인간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에서 시작한다. 나는 아직 순수한 면이 더 많은 어린 아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도 아직 다른 녀석들이 '감자'라는 별명을 지어 놀리기 전의 시절이었고 그래서 세상의 인간들이 자신에게만은 비우호적이라는 걸 깨닫기 전이었을 때다. 즉, 아직 아무 아픔이 없고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처세술을 강제로 익혀야만 하기 전이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어린 그 친구가 나에게 수줍게 부탁을 했다. 학교 끝나면 자기 집에 같이 가줄 수 있겠냐고.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뜬금없는 돌직구에서 어떤 마음을, 나는 어렸는데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이런저런 첫 시도를 해보던 순수한 용기와 예쁜 마음, 그런 것이었다.


당시는 게임보이용으로 출시됐던 포켓몬스터 옐로우 버전을 컴퓨터로 에뮬레이터에 ROM파일을 넣어서 플레이하던 시절이었고, 친구의 부탁은 자기 집에 와서 포켓볼 던지는 법 좀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아직 한글판 패치도 없던 때라 "영어로 돼있어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그랬던 것 같다. 그 친구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함께 가던 동네 오르막길이 떠오른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친구한테 뭔가 어른처럼 알려줄 수 있다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곧 도움을 줄 거라는 것, 낯선 친구의 집으로 간다는 것에서 설렘을 느꼈다.


집에 도착해서 그 애 방에서 포켓몬을 마주친 뒤 딸깍 두 번으로 포켓볼을 던졌다. 그걸로 약속된 일은 끝이 났지만 친구 어머니가 접시에 사과와, 포크 두 개를 담아 컴퓨터 책상에 놓아주고 가셨다. 이게 첫 기억이다. 나는 그 친구가 아니어도 늘 더 잘 어울릴 수 있는 친구가 많았기 때문에 이 일 이후에 친구 어머니의 기대처럼 각별한 사이가 되지는 못하고 지나갔다.   

    




중학생이 되었다.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중학교에 같이 진학했다. 같은 초등학교에서 같은 중학교로 100명 넘게 이동했기 때문에 이게 별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언젠가부터 '감자'가 돼있었다.


나는 당시 우리 초등학교 졸업생들을 거의 양분해서 가져간 두 중학교를 이어주던 입시학원을 다니지 않아 몰랐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중학교에서는 감자가, 다른 중학교에서는 또 한 녀석이 지역의 양대산맥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소위 Freak로. 시절엔 감자와 접점이 별로 없기도 했고 내 나름대로도 여러 가지로 가장 행복하고 힘들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별로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냥 어릴 때의 그 친구는 어쩌다 그렇게 흘러갔나 보네 하는 정도의 인식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고등학교도 감자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를 갔다. 아무래도 나름 지역명문인 데다가 남고였다보니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공만 차면서 같이 놀던 가장 친한 친구 놈들과는 그만 다 흩어져 버렸고, 감자는 원래 공부를 잘했다. 그래서 친하진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닌 감자에게 어떤 유대감을 더 느꼈다. 통학방법이라든지 기숙사 입사 조건에 관해서 어색하지 않게,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운 감정과 함께 편하게 대화를 나누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처음엔 그랬다.


1m 거리의 계단 아래에서 돌이 무섭도록 세차게 날아와 내 머리 위로 날아갔다. 재빨리 숙이지 않았다면 난간 사이를 통과해 온 돌멩이는 벽이 아니라 내 얼굴에 부딪혀서 멈췄을 것이다. 돌을 들고 있는 줄도 몰랐지만 투척 준비동작에서 나는 생존과 직결된 위험, 즉 감자의 나를 향한 살의를 본능적으로 감지했고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나보다 훨씬 체력이 떨어지는 감자의 추격을 500m 넘게 뿌리치지 못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후의 일이었다. 돌을 피한 나를 바라보는, 분노로 눈물이 글썽이는 눈과 슬프게 체념한 감자의 표정을 보고 나는 그제서야 그 모든 상황을 깨달았다. 


아, 나를 진짜로 죽여버리고 싶었던 거구나. 그래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거구나.


"감자! 감자!"


내 '장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고 나는 뒤돌아가서 계단을 내려가는 그 애를 처절하게 불러봤지만 소용없었다.


학교 폭력 가해자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늘 나처럼 '장난'이었다고 표현한다고 한다. 나도 가해자다. 나는 단지 물리적이나 금전적인 폭력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 감자의 마음에 폭력을 휘둘렀다. 후에 이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이때 죽을 걸.' 하고 생각했다.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고 내 인생이 이때 지은 죄의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하면 달게 받을 수 있었다. 그 친구가 이런 내 생각을 알았을 때는 알량한 죄책감이나 합리화라고 보겠지만.


친구가 되겠다는 믿음을 주고 배신했다. 다시 믿음을 주고 또 배신했다. 반복될수록 다시 믿음을 주는 일의 난이도는 올라갔고, 그때마다 더 철저한 위장과 연기, 진정성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걸 해냈을 때는 힘들게 탑을 쌓은 후 망가뜨려 버릴 때와 같은 쾌감을 느꼈다. 그게 나의 게임이었다.


내가 잘못했다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사실은 이런저런 솔직한 마음 때문이었다고 용서를 구했다. 용서를 받아내면 화해의 의미로 악수를 했다. 그리고 악수를 하는 순간에 그 애의 손을 팽개쳐버리며 또 속냐고 욕설로 모욕하고 뒤돌아 뛰어서 도망쳤다. 반복될수록 다음 용서까지 몇 개월이 걸리기도 했다. 죽을 뻔하고서야 이 미친 짓거리를 그만뒀다.


나는 집에 있던 시절 이런 나를 생각할 때마다 무서웠다.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나는 마음이 없는 인간인 걸까. 인간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괴물인 걸까. 또 작년부터 청년이음센터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도 이런 이중성을 가끔 느꼈다. 감동적인 무언가를 느끼면서도 내가 이면에서는 또 관계 게임, 신뢰주기 게임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면서.


심지어 사랑이라고 느낀 마음에도 '혹시 이게 감자에게 가졌던 마음과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어릴 때 누군가를 좋아했을 때는 정말로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았던 것도 같다. 그래서 무서웠다. 나는 남들처럼 진짜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인가 하고. 평범한 인간이 아닐까 봐 불안했다.


다행히 감자와의 끝은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 짓을 완전히 그만뒀고 반성했다. 야자시간에 공책에다가 자기가 개발할 게임의 세계관과 스토리를 짜고, 삽화를 그리면서 눈을 반짝이던 녀석의 책상 곁으로 가서 수학 문제 풀이를 묻곤 했다. 이번엔 게임으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신뢰를 쌓으러 갔다. 그리고 나는 이전과는 반대로 다른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감자도 매번 속기만 했기 때문에 마음을 연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은 내가 진짜로 그 짓을 그만뒀다는 걸 느낀 눈치였다.  


졸업식 날 감자의 반으로 가서 정식으로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는 말과 잘못했다는 말을 했다. 그동안은 늘 거짓으로 하던 말들. 감자는 말없이 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그 친구도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나를 봤을까. 내 인생을 봐서라도 용서해 줬을까.


지금부터 하려는 말은 내 죄를, 과거를 미화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이게 내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믿고 해 봐야겠다. 감자에게.


내 눈에는 머리는 좋은 주제에 이상하게 인간 대하는 법만은 몰라서 백치같이 구는 네가 보였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너는 완전히 그 부분을 포기하고 혼자 지냈지. 다른 녀석들은 그런 너의 인생을 알지도 못했고 보지도 않고,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봤다. 점심시간의 복도에서는 늘 혼자 결연한 표정으로 식당을 향해 빠르게 걷곤 하던 너를 봤고, 그 눈빛은 공포에 저항하는 인간의 불완전한 결연함에서 나온 것이었던 것도 느꼈다.


근데 미안하다. 내가 어렸어서, 그리고 나도 어딘가 구멍 난 상태로 자라고만 사람이었어서 큰 잘못을 했다. 너에게 상처를 줬다. 기존의 친구들에게 부끄러워서 당당하게 너와 친구 할 용기가 없었는지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것도 같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나는 네가 혼자 있는 게 신경이 쓰였던 건데 그때는 나도 내 마음의 정체를 몰랐고 방법도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이것들은 다 결국 변명이지만 어쨌든 나를 용서해 줘서 고맙다. 용서받을 수 있었어서 정말 다행이다.


네 덕분에 나는 지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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