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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호 Oct 19. 2024

#고등학교 (1)

나의 다름은

수리 30점.

고등학교 때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내가 가졌던 다름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수리 30점'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렸다. 적절한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공부를 하는 학생이 아니었고, 내가 간 고등학교는 대체로 공부를 하던 학생들이 오는 곳이었다. 대부분 입시학원을 다니면서나 과외, 학습지 등을 통해 중등수학을 탄탄히 한 친구들이었고 더 나아가서 고등과정까지 선행하고 온 친구들도 많았다.


나는 공부하지 않는 분위기의 중학교를 다녔다.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벼락치기로 치른 시험들로 그만 내신관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름 지역에서는 명문이라고 불리던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험이 운전면허필기시험식 문제 수준이던 중학교의 우물을 벗어나 '모의고사'라는 전국물을 처음 먹었을 때의 수리영역 점수가 30점이었다. 그 물 마시고 나는 사래가 들렸다. 친구들은 그런 시험에서도 평범하게 분포된 점수를 잘 받았다. 나는 이때 내가 주위 친구들과 다르게 굉장히 모자라다는 걸 알아버렸다.

'이 집단에서 나는 표준을 벗어나있다.'는 생각이 어느샌가 또 잠재의식에서 두려움으로 자리 잡았던 것 같다.


나는 그 후로 친구들과 같아지기 위해 수학 점수를 올리는데 주력했다. 국어나 외국어는 다행히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아도 점수가 곧잘 올랐고 탐구영역은 하는 만큼 올랐다. 그래서 하루 중 아침자습시간이나 야간자습시간, 쉬는 시간 등에는 거의 수학 공부에 올인했다. 하다가 너무 머리가 지끈거릴 때 머리를 식히는 시간으로 언어 쪽 문제집을 풀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수학시간에 수업을 열심히 듣고 개념을 외우지 않고 이해하려고 들고, 문제집을 풀고 또 풀어도 수학 점수는 잘 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일단 문제를 풀려고 하면 중등 과정의 개념을 당연히 알아야 했는데 나는 그것들이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고 처음 듣는 소리여서 공부가 온전히 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마 3학년 때까지 수학만 붙들었는데도 50~60점 대에서 계속 벗어나질 못했던 것 같다.


그런 내 주위 환경(기숙사)에는 유독 이과친구들이 많았다. 내가 처음으로 많이 좋아해 본 친구인 나의 농구 스승이자 짝꿍이었던 녀석도 이과였다. 유독 여자애 같은 태가 풍겨 '남자도 좋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라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던 녀석도 이과였다. 책장에 리만 가설과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풀메탈패닉, 용의자 X의 헌신 등이 있던 머리가 많이 좋던 녀석도 이과였다.


그 친구들은 국어와 외국어 점수도 좋았다. 전반적으로 문과 친구들이 수리 점수가 좋은 경우보다 이과 친구들이 언어계열 점수가 좋은 경우가 더 많았다. 물론 이과 녀석들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프리즘에는 불쌍할 정도의 삭막함과 건조함, 냉철함이 있다는 인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결코 결점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새벽의 이름을 짓는 일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도 손해볼 건 없어보였지만, 우주의 법칙을 해석하는 수식을 보고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주 특별해보였다. 어쩌면 그 건 다른 것이 아니라 확실한 우열이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는 내가 감성적이기만 하고 이과 머리가 처참할 정도로 없는 것이 정말 속상했다. 열등감을 많이 느꼈다. 수학 공부 일이 있기 전까지는 노력만 하면 모두 원하는 대로 향상이 됐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노력해도 안되는 것을 맞닥뜨리니 너무 힘들었다. 그런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우수한 녀석들이 흔한 곳에서 나의 기존의 강점도 살리지 못했다. 체대 학원을 다니고 체대를 간 친구들이 나보다 다 운동신경이나 운동능력이 안 좋았던 게 나의 유일한 비교우위였지만 예체능계열은 고려대상 자체가 아닌 인생관을 주입받았다. 그런 것을 볼 때 나는 항상 주도적인 삶을 사는데 약한 놈이었던 것 같다. 

  

작년에 알게 되어 가끔 연락하는 청년이 오늘 연락을 줘서 고립은둔 극복수기 공모전에서 내가 좋은 결과를 받은 것을 전해주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 같은 특성이 있는 인간으로 살아도 가끔 이득 볼 때가 있다는 건 그게 정말로 열등하기만 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런 유형들도 생존에 유리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진화한 것이겠지.

강점으로 살릴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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