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다름은
"착한 애들이 없잖아요." 나는 거의 울먹이면서 말했다.
교실 옆 2층과 3층을 잇는 층계참에 담임 선생님과 옆으로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너는 친구들이 많잖아."라는 선생님의 말에 대한 내 대답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아침마다 학교로 간다는 일을 굉장히 하기 싫어할 때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랬었는지, 1년 내내 그랬었는지 잠깐동안 그랬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왜' 학교에 가기 싫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학교가 가기 싫었다. 집에서 엄마가 보는 아침드라마를 같이 보다가 그 이후에 하는 TV유치원 종류의 프로그램까지 봤다. 둘 다 너무 재밌었고 TV를 보면서 계속 집에 있고 싶어 했다. 지금 쓰다가 생각해 보니 이미 이때부터 히키코모리의 자질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9시가 다 돼 갈 때쯤에 돼서야 겨우 집을 나서 학교로 향했다. 15분 정도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은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그걸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같은 길을 친구들과 떼로 다닐 때는 바보 같은 장난을 치고 농담을 주고받고, 몸싸움을 하기도 하면서 즐거웠지만, 어느 녀석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던지 어느 녀석은 여자친구를 사귀고 섹스를 했다던지 하는 식의 삶의 변화가 찾아오자 나는 그 길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이야기들 때문에 내가 친구들과 다르다는 두려움을 느꼈거나, 어쩌면 언젠가 들었던 '피터팬 콤플렉스' 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 공기 속에서 조용히 혼자 등교를 하고 있으면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학생이나, 가방을 메고 터벅터벅 힘없이 걸어가는 여학생이 있었다. 지각생은 보통 그렇게 두 부류였다. 나는 종종 그들과 모종의 유대를 느끼곤 하며 학교로 걸어갔다. 아파트와 동네 놀이터, 빌라들, 내리막과 오르막, 교장에 대한 욕이 적혀있는 담벼락과 단독주택들,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갈색 모래 운동장이 유독 광활하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학교 정문에 들어서게 된다.
교실에 들어가면 교실은 항상 가득 차있었다. 내가 마지막이었다. 국사선생님이었던 담임 선생님은 앞에서 아침 조회 같은 것을 하고 계시고, 그러다 크고 맑은 예쁜 눈으로 내 쪽을 한번 확인하시곤 지각한 나에게 친구처럼 친근하게 놀리는 말을 하곤 하셨다. 내용은 늘 "오늘도 어김없이 또 늦었네"라는 말들의 다양한 변형이었다. 그런 친근감과 장난기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으나 그것 때문에 지각한 것은 아니다.
지각하는 일이 지나치게 지속되고, 담임 선생님이 숙제를 받으러 집 앞까지 찾아오게 만들 정도로 숙제를 오랫동안 내지 않는 등 학교생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학교 가기 싫다.'는 생각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기력, 뭔가 잔뜩 복잡하게 엉켜있는 것 같은 머릿속, 확실히 심리적인 이슈가 있었다.
그렇게 어느 날, 마음을 먹은 선생님이 나를 부르신 바람에 둘이서 층계참에 앉아 상담 같은 대화를 하게 된 것이다.
'요즘 무슨 일이 있니?', '요즘 왜 그러니?' 같은 종류의 질문으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냥 학교 오기가 싫어요."
"학교 오면 친구들이 많잖아."
"착한 애들이 없잖아요."
밀크초콜릿과 다크초콜릿이 들어있는 깔끔하게 절단된 쿠키 단면 같은 계단 바닥은 분명하게 생각나는 것에 비해 그 뒤로 무슨 얘기가 더 오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 중에 착한 애들이 없다는 건 무슨 말이었을까? 아마 나 같은 친구가 없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이 건 내가 착하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내가 보는 어떤 것을 같이 볼 수 있고, 담배와 섹스, 학원, 얼마짜리 옷인지 같은 주제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런 것들을 이야기해도 괜찮은 친구, 들어줄 수 있는 친구. 착한 애.
그래서 늘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고독했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이런 고민을 하고, 나만 다르다고 생각했다. '사춘기'라는 누구나 지나는 인생의 순간이었음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