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호 Oct 12. 2024

#중학교 (2)

나의 다름은

영어 학원을 다니는 것은 즐거우면서도 괴로운 일이었다. 즐거운 것은 영어를 배움으로써 영어를 읽을 수 있게 되고 들을 수 있게 되는 일이었다. 확장된 세계를 만나게 되는 일. 그리고 주로 보이는 애들처럼 나도 이제 학원을 다니게 됐다는 것.


괴로운 것은 역시나 다름이 원인이었다. 나는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돈을 내고 학원을 다니고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름을 느꼈고 그것 때문에 괴로웠다.


달에 번씩 친구들은 때가 되면 학원비 봉투를 가지고 와서 선생님께 냈다. 학원비 수납일자를 적는 표가 인쇄되어 있는 봉투에 현금을 넣어냈다가 다시 봉투는 돌려받는 식으로 많이 했던 것 같다. 계좌이체 하는 애들도 있긴 했을 거다.


나는 이 작업을 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원장 선생님의 일종의 후원을 받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쭉 그렇게 생각했다.) 후원을 받는다는 사실은 어린 마음에, 내가 뭔가 투자 가치가 있는 특별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해 줌으로써 신이 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타고난 성정과 길러진 낮은 자존감은,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무겁고 암울한 책임감을 더 지배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아, 나도 그냥 말 안 듣고 불성실한 학생이고 싶다. 수업시간에 딴짓해도 눈치 볼 일 없는 철없는 놈팽이고 싶다.'


늘 학원의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씩씩하게, 감사하게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이겨내기에는 나는 강인함, 내구성이 부족했고 생각이 많았다. 겉으로는 숨겼지만 속으로는 곪고 있었다.  


학원을 꽤 오래 다녔다. 고3까지도 다녔으니. 수능을 몇 달 앞둔 시점에는 원장쌤이 내 수학성적이 너무 처참해서 옆 건물에 있는 수학 학원을 다니라고 자기 카드를 주셨다. 그래서 복잡한 마음으로 수학 학원을 좀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러자 성적이 올랐다. 그것도 비참했다. 혼자서 3년 동안 아무리 애를 써도 잘 오르지 않던 성적이 학원을 다니자마자 오르기 시작하니 '학원만 다녔어도'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가난을 원망하기 좋은 명분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말 강렬하게 사라져 버리고 싶었던 사건이 있었다. 수학 학원 원장 선생님이 학원비를 결제하다가 카드 뒷면에 서명된 영어 학원 원장선생님의 서명을 보게 됐을 때였다.


본인도 좋은 일에 동참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자신의 신성한 양심을 무시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학원비 반을 수학 학원 원장선생님이 결제를 하게 됐고, 영어 학원 원장선생님께 그 사실을 전해달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그 얼굴에서는 최대한 억제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인간으로서 뭔가 선한 일을 실행했다는 자기만족의 비릿한 들뜸이 보였다.  


영어 학원으로 가기 위해 수학 학원의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동안 무언가 굉장히 수치스러운 것을 들켰다는 감정이 뒤에서 나를 추격해 왔다. 꿈속에서 귀신에게 쫓길 때처럼, 마음이 너무 두렵고 불안하고 긴박했고, 그에 비해 몸은 기름 속에 잠겨있는 것마냥 무겁게 느껴졌다.


또 나는 어른들 사이에 끼인 캐치볼 공이 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들의 정신적 노리개 거나. 나는 그 순간 내가 주체가 아니라 완벽하게 무력한 객체가 되어버린 걸 알았고, 그건 정말이지 비참했다.  


'아, 그냥 사라져 버리고 싶다.'

'다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왜 내가 이런 상황에 놓여야 하지. 왜!'

'씨발!!!'


두 선생님 모두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애써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들을 모두 죽도록 원망하고 있는 나를 보는 것도 괴로웠다. 그런 괴로운 마음으로 영어 학원에 도착했다.


나는 수학 학원 원장쌤의 제안을 거부할 자격도 없고, 그럴 입장도 아닌(내 카드가 아니니까) 힘없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뭔가 그 일이 퍽 석연치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영어 학원 원장선생님에게 빨리 이 문제를 전달하고 판단과 결정을 받고 싶었다.


나의 은사는 자신의 뜻에서 굉장히 원치 않는 방향으로 문제가 흘러간 이 일종의 사고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과 수학 원장에게 짜증을 내었다. 당시에 아마 30대였던 젊은 수학 학원 원장 선생님의 치기와 짧은 생각을 꿰뚫어 본 듯 탄식했다. 하지만 이미 일은 일어나 버렸다.


은사는 수학 학원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전하라 했다. 그리고 다시 결제하라고. 그렇게 했다. 다시 한번 왕복하는 그 길과 계단도 똑같이 괴로웠다. 반반 결제는 없던 일이 되었지만 그 후로 나는 수학 학원에서도 영어 학원에서 느끼던 것과 똑같은 중압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수학 학원에서도 나는 부모님이 내는 돈으로 학원을 다니는 일반적인 학생들과 다른 특별한 학생이 된 것이다. (사실은 이미 그랬지만, 40살 차이 나는 친아빠보다 나는 이 친근하고 함께 인생을 더 자주 논하던 선생님을 아빠처럼 느꼈다.)




그랬던 나는 서른 살이 넘은 시점에 이사를 준비하면서 집구석구석에 오랫동안 쌓여있던 것들을 정리하다 뭘 발견했다. 영어 학원에서 썼던 교재라던지 학원비 봉투들이 정리된 상자가 있었다. '이게 왜 있지?'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아빠가 가끔 학원에 오던 때가 있었다는 걸. 원래 알고 지내던 원장선생님과 가끔 만나 교류를 이어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내가 돈을 낼 때도 있었던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뭐가 진짜인지 혼란이 왔다. 내가 돈을 안 내고 다녔다고 생각한 건 왜지? 전부는 아니고 일부를 냈었나? 우울이 기억을 왜곡시켰나?


'돈을 내고 다닌 줄 알았으면 그렇게 괴로울 필요가 없었잖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억울해 죽을 것 같은 건 분명했다. 그러다가 그냥 돈 다 내고 다녔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이 문제에서 짐을 덜고 편해지자고 생각했다. 오래된 일이기도 했고 이미 되돌릴 수 없었기에.

이전 04화 #중학교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