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때부터 친구들이 학원을 슬슬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했고 중학생이 되자 더 심해졌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점점 줄어드는, 학원을 다니지 않는 친구들이랑 주로 공을 차고 놀면서 그 시절을 보냈다.
집에 오면 저녁을 먹고 뭘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러다 내가 중3이 되는 겨울방학에 영어학원을 다니게 됐다. 우리 집 상가 건물에 있는 영어학원에 계시던 선생님이 개업을 해서 나가셨는데, 5층 꼬맹이가 중3이 되도록 공부는 손도 안 대고 있다는 걸 아시고는 공부를 시키겠다며 나를 부른 것이다.
방과 후에 축구를 하거나 농구를 하거나 하는 일 말고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집으로 갔다가 학원차가 올 시간이 되면 교복을 입은 채로 버스를 탔다.
옷을 산다는 행위를 거의 해본 적이 없고, 그래서 친구들이 평범하게 입고 다니는 느낌의 옷은커녕 옷 자체가 잘 없었다.
학원에 도착하니 또래들은 모두 집에서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와서 수업을 들었다. 그게 어찌나 또 눌리던지. 쟤네들처럼 용돈으로 혼자 쇼핑을 한다든지, 부모님이랑 다니면서 쇼핑을 한다든지 하는 경험이 내게는 없다는 걸 생각하면서 나는 또 평범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초등학생일 때 수학여행인지 야영인지를 간다고 옷을 사러 갔을 때와 아주 가끔 새 옷을 사러 갈 때 엄마 표정이나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아마 나도 모르게 안 좋게 새겨졌었던 것 같다. 나 때문에 돈을 쓰게 만들었고 엄마를 힘들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쇼핑을 두려워하게 만든 시작이었던 것 같다.
자아존중감이라는 단어가 유행하지 않던 20년 전 일이지만 나는 높은 자신감에 비해 자존감은 굉장히 낮았던 것 같다. 이사 간 친구가 동네에 놀러 왔다고 전화를 했던 저녁에도 입고 나갈 옷이 없어서 안 간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거실 카펫 위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던 부모님과 갈색 전화기, 책장들과 꽃봉오리 모양의 조명 같은 그때의 거실 풍경이 생생한 만큼 감정도 생생하다. 화도 나고 인생에 지치기도 했다. 사춘기였으니까.
지금도 옷 사는 일은 거의 하지 않고, 여전히 못 한다. 작년부터 대학교를 다시 다니면서도 집에서 주워온 멀쩡한 옷들을 많이 활용했다. 그래도 언젠가부터는 내 어깨나 가슴, 허리나 팔다리 기장 같은 옷 사이즈를 메모장에 적어놓고 있다.
이 '다름'은 돈을 벌면 어느 정도 쉽게 해소할 수 있는 문제여서 다행이다.
그런 거 치고 지금도 수입이 조금 있다고 해서 옷에 돈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하ㅡ. 니는 왜 맨날 교복 입고 다니냐는 말이나 똑같은 옷 입는다는 말이 생각보다 잘 안 잊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