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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호 Oct 22. 2024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2024년 10월 22일 화요일

"왜 여기 다 나오셨어요?" 도서관 출납카운터 쪽 직원분들이 사무실 밖에 모인 사서 선생님들께 물었다.

"오늘 한 명밖에 없어서요. 같이 해야 해요." 국가근로장학 담당자 사서분께서 대답하셨다.


그랬다. 오늘 오전은 나만 출근했다. 그래서 사서선생님 세 분이 총출동해서 배가를 같이했다. 정말 듬직했다. 어제 근장생들이 시험기간이어서 많이 빠졌을 때 일이 많아져서 '나도 뺄 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까지 빠지면 남은 근장생이 그만큼 더 고생할 거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오늘처럼 정말 답 없이 근장생이 많이 빠지면 오히려 좋은 이벤트가 발생한다는 걸 알게 됐다.


사서 선생님들의 실력은 대단했다. 일이 정말 빨리 정리됐다. 덕분에 시험 공부할 시간이 조금 늘었다. 그런 거 치고 너무 조는 바람에 +-0 이 돼버린 것 같기도 했지만.


시험기간이라고 평소와 뭔가 극적으로 달라지고 싶진 않다. 시험을 치는 게 별 일이 아닌 것처럼 지나가고 싶다. 별 일 아닌 것처럼 해내고 싶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밤을 새운다든가, 일을 빠지다든가하기는 싫다. 그러니까 평소에 가끔 때마다 복습 정도를 미리 해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한 번에 몰아쳐서 하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 이런 성향이 성공하는데 도움이 될지 어떨지 모르겠다.


시험기간에는 역시 학교에 있다가 아침을 먹으러 오는 학생들이 많다. 평소보다 몇 배는 긴 밥 줄을 볼 때마다 '주기가 돌았구나.' 싶다. 시간은 늘 잘 간다.


또 사소한 일상으로는, 기숙사 엘리베이터 하나가 얼마 전부터 이상하더라니 결국 오늘 아침엔 수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있다.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자주 걸어 올라가는 나에게는 어차피 별 타격이 되지 않지만 누군가에는 아닐 것이다.


그 누군가는 아마 다리를 저는 학생일 수도 있다. 그 학생을 기숙사에서 마주칠 때마다 시선이 그쪽으로 날아가서 꽂히지 않거나 부자연스럽게 머물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아니면 어색하게 눈을 돌리지 않고 완전히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거나.


그 일에는 번번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 같다. 딱 한 번, 내가 너무 행복해서 기분이 좋았던 때에 그 다리를 심각하게 절뚝대는 학생을 마주쳤는데 그때는 사랑스럽게,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볼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게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랑은 날 그런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건 신기한 일이었다.  


시험 공부하기가 싫다. 싫어도 해야 하는 걸 아는데도 하기가 싫다. 그래서 평소보다 영어 말하기 앱을 더 오래 썼다.


I've been going to college for one year. I came back to school last year after a 10-year hiatus from college. It's currently exam period, so I'm studying hard to get good grades.


10년이라는 긴 시간 후에 다시 학업에 도전하시는 모습이 정말 멋집니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네요. 시험 기간 동안 건강 잘 챙기시면서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화이팅하세요!


이러고 대화하고 놀았다. 람보다 나은 면이 없잖아 있다.


그리고 코치 분이 짧게 해야한다길래 짧게 통화 하고.


잘 참고 그래도 조금만 더 해보자.

졸업만 하려는 목표로 8년 만에 재입학한 거긴 하지만 그래도 할 땐 해야지. 그래야 뭐든 하지.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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