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북에 대한 이야기를 또 하고 싶다. 오늘도 한 과목 오픈북 시험을 치렀기도 하고, 워낙에 밥 먹기, 시험 공부하기, 근로하기 밖에 없는 평이한 일상이었어서 다른 어떤 통찰을 얻을 만한 것이 잘 없었다.
결론적으로 오늘 시험은 배점이 높은 단답형 문제를 많이 틀렸다. 시험이 끝나고 강의실에서 나올 때 뒤에서 남학생 두 명이 답을 맞혀보는 이야기를 듣고 알았다. 그리고 애초에 몇 개 잘 채워 넣지 못했기도 하고.
오늘 오픈북 시험을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건, 책에서 찾는 것보다 머리에서 바로 꺼내는 게 훨씬 빠르다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오픈북이어도 일일이 페이지를 넘기면서 귀찮게 찾지 않고 머리에 있는 페이지에서 ctrl-f 하는 게 편할 것 같다. 종이책은 ctrl-f가 안 되는 게 큰 흠이다.
그래서 사실 대부분의 문제를 교과서에서 찾지 않고 풀었다. 손해 보는 느낌이 좀 들었지만 뭐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교과서에서 해당 내용을 찾는 것도 하나의 능력인 것 같다. 이런 능력을 기를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이 모든 걸 공부한 상태로 푸는 건 아니니까. 찾을 수 있게 대비하는 것은 별개의 능력이었다.
이번 시즌에 오픈북 처음 해보는 거니까 깨지면서 배웠다고 생각하자. 지난 학기에도 이런 기분이었는데 성적이 잘 나왔으니 괜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잡생각
어떤 사람의 성장 배경이나 일련의 인생 사건들을 들으면 아무래도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저 사람은 이러저러했으니 그러저러한 영향을 받았을 거야.',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됐겠지.' 하는 축약을 하게 된다. 그럴 때 상대는 어떨까?
남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의 인생을 요약한 말이나, 추측하는 말을 편하게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있을까? 그게 정말 온전하게 자신을 담아내고 있는 말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적어도 난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그건 억울하다. 그 말들이 전부 사실이어도 내 인생이 그렇게, 내 감정이 그렇게 간단해지는 건 좀 뭔가 서운한 일이다.
그런 억울함을 피하기 위해서는 내 입으로 모든 걸 남김없이 다 털어놓든가, 상대방에게 온전히 이해받기를 포기하든가 하는 두 선택이 가능한 것 같다. 다른 것이 있다면 아직은 내가 잘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어디 남김없이 털어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약점 삼아 우위를 점하려는 인간, 정신적으로 깔보는 인간, 배신하는 인간도 많다. 운이 좋아 그런 상대가 아니라면, 아마 털어놓음으로써 내 짐을 나누어서 지게 만드는 게 미안한 사람만 남을 것이다.
무언가를 털어놓는다고 약점 잡히지 않고, 미안하게 만들지도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떠오른다면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인가 싶다. 정말 나는 특별하지 않고 모든 인간처럼 평범한 고통 속에 사는 인생이다. 내가 겪는 고통은 모두가 겪은 고통이고 모두가 겪을 고통이다. 나는 내 고통을 밖으로 드러냈을 때 비로소 가벼워졌다. 그렇게 하는데에는 뭔가 내가 고집해온 자아가 바스라질 것 같은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러면서 덩달아 조금 용기있는 사람이 되기도 한 것 같다. 변하기 위해서는 원래 하던 선택과 다른 선택을 해야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모두가 동일한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은 은밀한 위로이며 조심스러운 희망이었다."라고 말한 청년클레어 님의 문장이 떠오른다. 조금 더 눈치를 봐야하는지 모르겠는데 난 그걸로 대놓고 위로받지, 은밀하게 위로받지도 않는다.
전에는 남이 고통받는다는 것으로 내 고통을 중화시키는 게 나쁜 짓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생각이 변했다. 우리는 그래서 결국 다 하나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이라는 전장에서 전우애를 느끼는 것이다. 그런 전우애를 가지고 적당한 선에서 믿을만한 인간을 잘 가려서 좀 믿어가며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시험기간에 나만 공부하기가 싫은 것이 아니고 나만 잠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나만 도서관 책상에서 조는 게 아니다. 나만 시험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살아가기 든든한가. 이러니까 좀 버텨볼 만하다.
시간이 지나서 이 사소한 문제들이 다른 크고 중요한 문제들로 변하더라도 결국은 같을 것이다. 그때 가서도이걸 까먹지 않고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