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왼쪽에서 걷던 녀석이 반 넘게 감긴 눈으로 날 쳐다보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무덤덤하게 말을 했다. 청계천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묵직한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영혼이 따뜻해지고 가슴에 울림이 번지는 것을 느꼈다. 말에는 질량이 없고 진심에도 질량이란 건 없겠지만 진심이 담긴 말은 왜인지 무거운 것이 되나 보다.
"그래 안 아플게."
최근 이 친구 녀석은 그동안의 분주함으로 피로가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날은 유독 그 활력을 강하게 느낄 수 있기도 했었다. 피로가 쌓인 이유는 짐작을 할만했다.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니까. 불안. 아마 불안이든 뭐든 부정적 정서를 퇴치하기 위해 몸 바쁘게, 마음 바쁘게 다녔을 것이다. 어떻게 봐도 무리 중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피로가 몰려올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말릴 수도 없었다. 피곤한 모습에 '너 그럴 줄 알았다.'라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누구보다도 직접 찍어 먹어보고 판단하는 내가 그런 말을 해봐야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가끔 옆에서 살짝 기댈만한 것을 건네주려고 할 수밖에는 없었다.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그렇게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계속 활동하다 발목이라든지 허리를 다쳤었다. 친구 놈이 혹시라도 그렇게 다치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을 했었다. 잘 넘어간 것 같다. 이제는 본인이 지친 상태에 대해서 인지를 했으니 조절을 잘할 것이다.
"네가 안 아팠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다시 곱씹어 본다. 이미 예전부터 수필에서 자주 등장하는 문구이기도 하고, 정말 흔한 말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직접 이 말을 들어본 것은 이번이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다. 아파하지 않겠다고 대답하고 나서 '그래 안 아파야지'하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 나를 위해주는 마음을 귀로 듣는다는 일은 정말 눈물이 날만치 감동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