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용돈으로 주식도 사보고 그래, 잃어도 상관없는 백만원정도로만 그냥 해보면 되잖아."
2010년 신입생이던 내게 충격적으로 들렸던 교수님의 말이다. 당시 내가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한 학기 생활비 대출을 받으면 그 돈이 백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때 천 원, 이천 원씩 타쓰던 것 말고는 용돈이라는 걸 받아본 적도 없었고 잃어도 될 돈은커녕 던킨에서 선생님이 사준대도 도넛 하나 맘 편하게 못 골랐을 정도로 돈에 벌벌 떨던 나였다. '서울 소재 경영학과 학생들 대상으로는 저게 평범한 발언인 걸까?' 하는 생각에 세계관에 혼란이 왔다. 대도시민들의 소득 수준에 박탈감을 느낀다는 세상에서 흔히 벌어지곤 하는 일이었다. 내가 그 사실을 잘 모르고 대처를 못했을 뿐.
지난 학기 투자론 강의를 들을 때는 교수님이 ETF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ETF는 굉장히 괜찮은 상품이라고 관심을 가져보라는 뉘앙스로만. 누나들도 그동안 내게 적금을 들어라 어쩌라 했었다. 근데 못했다. 금융이라는 게 뭘 어디서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도저히 모르겠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왠지 더 하기가 싫어졌다. 그렇게 걸음마의 첫 발을 떼지 못하는 상태로 14년이 흘렀다.
얼마 전 우연히 증권계좌를 만들고 ETF를 얼마어치 사봤다. 잃어도 상관없는 정도의 돈으로. 여기까지 14년 걸렸다. 금융이라는 것이 제도권 교육에서 배울 수 없고 가정환경이나 주변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영역이다 보니 힘들었다고, 오래 걸렸다고 말하고 싶다. 변명하고 싶다. 그래도 또 하나의 미지에 발을 디뎌서 후련하다.
오늘 아침 도서관에 국가근로장학을 하러 출근하는데 어제보다 나무가 많이 쓰러져있었다. 나무가 언제 쓰러질지 모를 만큼 기울어진 곳은 출입통제를 해놨다. 겨울이 가을에 경미한 추돌을 한 수준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 큰일이 났다. 어제는 내가 너무 태평한 소리를 한 것 같았다. 이러다 영화 『투모로우』처럼 되는 걸까 싶기도 했다.
블랙아이스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무섭다, 다칠까 봐. 내가, 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