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찢어발기며 겨울이 나타났다고 생각할 뻔했다. 찍어놓은 사진들을 통해 계절이 서서히 변한 모습을 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다만 겨울은 제시간에 맞춰오느라 과속을 좀 했고,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앞서가던 가을과 추돌을 한 것 같다.
비가 내린 어제와 눈이 내린 오늘의 차이
어제 내린 비, 우박이 겨울이 올 전조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막상 하루 만에 대설을 맞은 오늘의 사진을 보니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됐건 하얗고 추운 겨울이다. 분홍색으로 덮였던 곳이 노란색으로 덮였다가 이제 흰색으로 덮인 것을 보니 시간이 왜 이렇게 잘 가나 싶다.
꽃은 같은 자리, 같은 꽃이어도 저마다 조금씩 피는 때가 다르고 지는 때도 다른데 눈꽃은 모두 까만 가지 위에서 같은 때에 새하얗게 피어난다는 걸 생각했다. 눈꽃끼리는 사이가 좋아 보였다.
그런데 오늘 평소처럼 주랑에서 사진을 찍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왜 그런가 하니 액자 속 나무가 부러진 것이었다. 올해 가을은 너무 따뜻한 바람에 나무가 잎을 다 떨어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 상태로 갑자기 큰눈이 와버리니 잎이 눈송이를 너무 많이 받아버리면서 무게를 버티지 못한 가지가 큼직큼직하게 꺾여 땅으로 떨어졌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부러진 나무 옆을 지나며 떨어진 가지를 크고 생생하게 보니, 졸업할 때까지 사진을 찍을 생각이었던 포인트가 손상된 것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너무하네. 매일 보던 나무가 부서져 있으면 마음 아파해야 하는 거 아니야?'하고 스스로에게 꾸중한 건 그다음이었다.
나무를 지나쳐서 산책을 이어가는데 '우지지직' 하고 나무 찢어지는 소리가 조용한 아침 공기 중에 퍼졌다. 어디선가 또 나무가 부서졌다. 앞에는 내가 듣지 못한 비명을 이미 지르고 지쳐 밑동을 드러낸 채 조용히 쓰러져있던 소나무가 산책길을 막고 있었다. 그제서야 예삿일이 아님을 실감했다.
눈은 예쁘다. 하얗고 차갑고 치명적이다. 그래서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했다.
오늘은 산책 코스의 반환점인 미대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쯤 쓰레기봉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밀고 가는 아직 할아버지가 되지 않은 아저씨가 있었다. 그분은 1미터가 조금 넘는 짧은 경사를 순수레를 밀고 내려오다 녹은 눈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으셨다. 고관절이나 허리가 충분히 깨져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위험해요, 내려오지 마세요! 제가 잡아드릴게요."하고 말하지 않은 내가 싫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보고 난 후에는 겨울이 예쁘기만 하고 실상은 피도 눈물도 없이 차갑고 무서운 여자같이 느껴져서 정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