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돌아보며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by 온호

2025년이다. 처음 만나는 낯선 숫자다. 처음 만났지만 왠지 2024라는 숫자가 그랬듯 2025라는 숫자도 익숙해질 때쯤 다음 대기자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뒤로 잊혀 사라질 미래가 보이는 것만 같다. 2025라는 물에 충분히 흠뻑 몸을 적시고 일어나 나오도록 올 한 해 열심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4년 회고

2023년 2학기로 재입학하면서 히키코모리 생활을 청산한 이후, 2024년 한 해 동안 여러 가지를 많이 했다. 죽은 거나 마찬가지로 산 세월을 뛰어넘고 싶은 조급함이 대부분이었고 실제로 '경험' 자체가 워낙 빈약했기 때문에 데이터를 채워나가기도 해야 했다. 이번에 본가에서 12월의 끝, 1월의 시작을 맞으면서 혼자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을 애써 추스를 때 떠오른 생각이 있다. '아, 단순히 경험만 는다고 해서 자존감이 높아지는 건 아니구나. 남들은 해봤지만 내가 못 해본 경험을 해본다고 해서 자존감이 높아지는 건 아니구나.'


2025년에는 '해본다'는 구실로 이것저것 쓸데없는 것을 하러 다니진 않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될 뿐이다. 나머지는 공허하다. 그걸 깨달았다.


그리고 진정으로 내가 열망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것. 나 같은 경우에는 진로에 대해 크게 염려하고 있으면서 경험이라는 합리화로 다른 데 눈을 많이 돌리고 있었다. 연말에 몇몇 내 집중을 흐트러뜨리는 것들을 쳐내고 정리함으로써 의식을 간소화했다. 그리고 마음먹고 취업을 위해서 쳇바퀴에 올라탔다. 쳇바퀴에 올라타기엔 나는 너무 특별하다는 생각을 버렸다. 이게 맞는지 분명한 확신도 없지만 가다가 다른 길을 걷게 되더라도 일단 출발하기로 했다. 맞나 아니냐 따지다가 버린 세월이 얼마인가. 이제는 일단 가고보자.


어제는 1월 일정 표시를 하려고 달력을 넘겼는데 딱딱한 뼈대가 나왔다. 1월이 없었다. 1년이 지난 것을 절감하면서 큰누나가 2023년에 줬던 2024년 허영만의 식객 캘린더를 접어 책상 한편에 뒀다. 그리고 '어떤 일들이 있었었나' 하는 맘으로 1월부터 보려 했는데 1월 어느 날에 쳐진 동그라미를 보고 더 넘겨볼 생각이 사라졌다. 거기엔 나에게 격변을 일으킨 하루가 있었고 그 이후의 기억들을 한 번에 마음으로 불러오기엔 힘들 것 같아서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시간이라는 건 물처럼 흐르기 때문에 그것에 눈금을 새겨 나누는 건 무의미하다고 나는 늘 생각했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가족들의 말을 들을 때나 크리스마스나 새해 같은 날들에도 그랬다. 내 앞에 또 24시간이 떨어지고 반복되는 모두가 똑같은 하나의 날들인데 뭐가 다르고 특별한가 싶었다. 그래도 이번 경우엔 2024에서 2025로,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변하는 그 눈금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24-2학기 회고

2024년 12월 20일에 2학기 종강을 한 후 처음으로 강의평가에 참여했다. 강의 평가 실시자는 성적 확인을 일찍 할 수 있는데 나는 이번 학기 성적을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왜냐면 상대적으로 학업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가 너무 궁금했던 것이다. 열심히 했을 때 평점 4.3점을 받았지만 그만큼의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4.3점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는지, 만약 그렇다면 얼만큼의 노력이 낭비됐던 것일지, 혹은 얼만큼 내가 비효율적으로 공부했는지. 이 모든 것들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대조군(안 좋은 성적)이 생길 기회같이 느껴져서 이번 학기 성적이 유독 많이 궁금했다. 열심히 했을 때 성적이 얼마나 잘 나올지가 궁금한 것보다 소홀히 했을 때 성적이 얼마나 안 나올지가 더 궁금하다는 게 재밌게 여겨지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무성의하게 임한 것치고 결과적으로 생각보다 평점이 많이 떨어지지는 않아서 안도했다. 3.933점 정도가 나왔다. 무엇을 '부차적인 것'이라고 볼지는 가치관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이번엔 학점을 내 인생의 순간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판단했었다. 그래도 학생으로서 최소한의 할 도리는 지키는 모습이 바람직할 것 같아서 유독 하기 싫고 힘들었지만 버티고 버티면서 책을 붙잡아 선방했다는 느낌이다.


마케팅조사론과 보험학원론이 가장 힘들었던 과목인데 A+가 나온 게 상당히 의외였다. 강의 들을 때마다 우울해지는 기분이 들고 포기하고 편해지고 싶은 과목이었다. 중간시험도 70점대가 나오면서 어느 정도 성적은 내려놨었는데 최종 결과가 좋게 나와서 더 기뻤다. 한 3분짜리 기쁨이긴 했지만. 반대로 열심히 참여했던 경영세미나(코칭) 강의는 B+로 이번 학기 유일한 B가 떴다. 배신감과, 보고서를 어떻게 썼으면 이 성적을 안 받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중국인 유학생 90%, 강의시간에 수업을 듣는 학생 3명이 안 되는 강의는 무서울 정도로 이상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드는 강의였다. 교수님 강의자료가 학생들에게 배포한 것과 다르거나 없을 때가 많았는데도 나 말고 아무도 교수님께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 강의는 기말시험은 공부 자체를 안 했다. 그런데 공부를 했던 중간시험보다 점수가 10점 이상 높게 나왔다. 최종 성적은 A-가 나왔는데 비효율적으로 공부한 과목이 있다면 아마 이 강의지 싶다. 채점 기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접근했으면 쉽게 좋은 성적을 거뒀을 것 같다.


지난 학기는 단순히 답안지의 여백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부를 하고 그 내용들이 내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큼 내 지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부했다. 그리고 결과도 좋았다. 이번 학기는 의미를 찾는 것에 지쳤던 것 같다. 의미를 포기하고 적은 투입으로 많은 산출을 내는 효율만을 중시하는 인간이 되고 싶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냥 생겨먹은 대로 의미를 중시하며 공부하고 효율에 좀 더 신경 쓰는 학습을 하는 게 정신적 만족이 더 큰 것 같다. 남들이 강의 안 듣고 각자 자기 할 거를 하면서 미래를 준비한다고, 불안해서 그들 따라 해 봤자 나는 행복하지 않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