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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Jan 07. 2024

히키코모리 탈출 일지

학교 근로 장학 근무를 시작했다

 1월 1일 청년들과 산에 다녀온 후 밤도 새우고 그랬으니 낮잠을 잘까 했다. 그러다 다음 날 아침이 근로장학 첫 출근일인 걸 떠올렸다. 괜히 낮잠 잤다가 밤에 잠 설치고 아침 기상에 악영향을 줄까 봐 잠을 자지 않고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면서 수면압을 밤까지 잘 가져가기로 했다.


 근무 시간은 주 5일에 09:00 - 18:00. 유치원에서 일한다. 가족 단톡방에(부모님과 남매들만으로 8명이나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단톡이다.) 그 소식을 알렸을 때 무슨 직장인처럼 다니냐며 놀랐던 반응이 생각난다.

시급이 11,000 원 정도 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교외 근로지는 교내 근로지보다 시급이 높다. 기숙사에서 도보 3분 거리로 가까워 위치상 교내이지만 사업자 등록상 교외로 판정이 난 것이었다. 해보지 않은 일보다는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고 내가 아이들을 잘 돌보니 학교 유치원에 지원한 것이었는데 뜻밖의 이득을 봤다.  


 학생 식당에서 조식 1,000원을 하던 것이 방학되면서 없어져서 아쉬운 마음으로 아침을 내가 준비해 먹었다. 그리고 씻고 출근을 했다. 유치원 유리문 앞에 도착하니 어떤 까만 롱패딩을 입은 여학생이 문을 열려고 이리저리 찾고 있었다. 잠시 후 안에서 선생님이 나와서 열어주셨다. 유치원 안에서 인사를 나누는데 문 밖에서 까만 미디 패딩을 입은 여학생이 이리저리 들어올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내가 가서 열어줘 보려는데 잘 몰라서 또 선생님이 오셔서 열어주셨다.


 인사를 나누고, 예민한 세상이니 오해를 살만한 행동하지 마시라는 당부와 아이들을 안아주면 안 된다는 주의 사항을 들었다. 일감을 주시고 사무적인 대화가 끝나자 원감 선생님은 본인의 사무실로 가셨다. 테이블에 여학생 두 명과 둘러앉아 교부용 다이어리에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 나이가 어떻게 되시냐, 무슨 과 이시냐며 간단한 아이스브레이킹을 하는 과정에서 서른둘이라니까 4학년이 되는 친구가 "부럽다."라고 하길래 분명히 잘못 들은 거 같아서 "아니 스물둘이 아니고 서른둘이에요." 했다. '부럽기는 내가 니네가 부럽지.' 속으로 생각했다. 나이 얘기를 하게 될 때 같이 일하는 학생들의 반응이 어떨지는 출근 전에도 궁금했었다. 예상보다 2학년으로 올라가는 친구도, 4학년이 되는 친구도 별로 움찔하는 반응도 없었다. 오히려 그 친구들이 대수롭지 않게 '인생은 기니까.' 같은 말을 했다. 그들 안에서 주제를 길게 가져가지 않거나 티를 내지 않으려는 노력이 분명히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게 배려심임이 느껴져서 어리지만 참 멋진 친구들이구나 생각했다.


 그 이후로도 편하게 수다를 떨면서 일하다가(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할 말이 없어 조용히 있었다.) 점심시간이 됐다. 어떻게 할지 묻길래 내가 "첫날이니 앞으로는 뭐 따로 먹든 같이 먹든 어떻게 될지 몰라도 오늘은 같이 먹을까요?" 했다. 그렇게 학교 정문 앞에서 친구들이 추천한 식당에서 백반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분위기 편하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에 뭔진 몰라도 그랬다면 잘됐다고 저도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훈훈하게 식사를 끝내고 유치원으로 돌아와 또 수다를 떨며 일을 하니 시간이 금방 가서 퇴근을 하게 됐다. 유리문 앞에서 이번엔 버튼을 잘 찾아서 열고 나가면서 인사를 나눴다.


 나보다 훨씬 씩씩하게 사회에서 버티며 알바도 많이 하고, 인생 경험도 많은 그 두 어린 여학생이 퇴근하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면서 존경스러웠다. 나도 저래야지.


 유치원 방학이 끝나는 내일부터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고, 다른 근로장학생들도 만나게 될 텐데 기대와 걱정이 된다. 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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