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열심히 살아봤자 뭐 없다고 대충 하라고 말씀하시던 분이 있었다. 일회성 클라이밍 체험을 하러 갔을 때 보게 된 어른이었다. 그 말을 듣고 '열심히 해봤지만 현실의 높은 벽에 좌절하고 상처 입었던 적이 있으신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무언가에 지치거나 체념한 채로 젖어 살고 있는 사람 특유의 빠르게 던지는 말과 냉소를 느낀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해야지.' 속으로만 내뱉었다. 지금 그 순간의 기억이 떠오르는 건 아마 내가 열심히 하지 않고 있어서일 것이다.
예전에는 기숙사 침대에서 눈을 뜨면 허리 스트레칭을 10분 정도 간단하게 하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거나 캠퍼스 산책을 하는 루틴이 있었다. 그러다가 한동안 아침에 아무 눈공도 뭉쳐놓지 못해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굴리지 못한 채 멈춰 서있는 생활을 했다. 그 흐름을 끊을 수가 없었다. 요즘은 다행히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 끊을 힘이 생겨서 덜 그러고 있다. 몸을 정 일으키기 싫을 땐 잠자리 맡에 둔 책을 집어 들어 읽기도 했고, 오늘 같이 조금 더 기운이 있는 날은 일어나서 따뜻한 물과 비타민을 먹고 푸시업과 스쿼트를 200개 정도씩 한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아침을 사러 다녀온다. 이만큼 하는 것도 대단해져 버렸지만 취침 전 30분, 기상 후 30분 철저하게 핸드폰을 보지 않던 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혀를 찼을 것 같다. 뭐 어쩌라고. 지금이 저점이라 그렇다. 봐줘.
룸메가 만들어내는 변기 지린내와 각종 소음들로부터 벗어났지만 혼자인 것은 또 그 나름대로 힘들다. 누군가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고, 이사 직후 셀프 입주청소를 할 때부터 있던 마음이다. 누나들 집에 가서 조카들과 놀고, 식사 준비를 돕고, 청소를 하던 다정한 내가 나의 형제로 내 방으로도 찾아와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이런저런 과정들 속에서 생활 핵의 중력이 약해지다 보니 생활 응집이 잘 안 됐던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 오늘은 오전에는 퍼져 있다가 오후부터 컴활 1급실기 공부를 했다. 그리고 하고 있다. 지금 일기를 쓰는 건 공부 사이의 휴식이고 건전한 오락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나 예술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수용자라는 존재로 인해 비슷한 고민들을 하지만 나는 그걸 잠깐 하다 그만뒀기 때문에 이 일은 내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그런 고민할 깜냥도 되지 않을뿐더러 애초에 부정적 감정의 배출구로서 일기를 쓰는 것이 내 목표였기 때문이다. "일기는 일기장에-"라고 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 대한 반박으로는, "장기 고립은둔 경험자로서 자기 수용의 일환으로 내면을 세계화해 보는 것입니다."를 들이민다. 이렇듯 나를 위한 글, 배려 없는 글, 자기중심적인 글이라도 와서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들의 마음이 연민이든, 공감이든, 응원이든 뭐가 됐든 간에 말이다. 그건 따뜻한 것이고 살리는 것이다.
취업을 위한 최소한의 정량적 준비로서 컴활 1급 시험공부를 끄적끄적하고 있는데, 문득 '이건 참 작은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이라는 것도 작다. 지금 당장은 컴활도 취업도 커 보이지만 다시 처음의 생각으로 돌아가서 보면 너무나 작은 것이 된다. 살기 위해서 집 밖으로 나갈 결심을 할 때는 일이야 무슨 일이든 해서 입에 풀칠하고 살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이었으니. 작은 것을 위한 작은 것을 겨우 하나 하고 있으면서도 하기가 싫어 방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나를 독려하는 말로 괜찮은 것 같다. 작은 것 중의 작은 것.
그리고 이제 개강이다. 네 학기 째 노트를 찢어 만든 시간표에 수기로 강의명과 강의실, 교수명을 적어서 책상에 붙여놓고 있다. 화/목 공강을 만들었는데 처음의 의미를 잃어서 새로운 의미로 채웠다. 화/목 공강을 만드는 바람에 금요일은 09:00부터 17:45까지 빈칸이 없다. 근데 걱정이 되지를 않는다. 두 번째 룸메에게 배운 말, "안 죽는다." 이렇게 들어도 들어도 저렇게 들어도, 이렇게 시험 치고 저렇게 시험 쳐도 안 죽는다. 한 학기는 있었냐는 듯 지나갈 것이고 지나고 나면 적당히 3점 후반대 성적이 찍혀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는 내가 살아가는데 큰 뭔가가 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