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3월 4일. 11년 전 내가 군대를 전역한 날의 이름도 3월 4일이었다. 말출 때 아마 복학신청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전역하자마자 학교를 다녔다. 청파동 반지하 큰누나 자취방에 얹혀살면서 한 학기를 열심히 보낸 뒤 방학 때부터 나는 8여 년 간의 긴 고립은둔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24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1년 반의 고립은둔으로 친구들보다 한 학년 뒤쳐진 상태라는 것에서 굉장한 불안을 느꼈다. 불안이라고 단순하게 말하기도 모자란 것 같다. 대다수의 속도와 다르다는 것, 뒤쳐졌다는 것, 준거집단이 뭉쳐있는 곳이 아닌 곳에 혼자 떨어져 있다는 것, 평범-평균과 다르다는 것. 시야를 혼탁하게 하는 짙은 안개 같은 것이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드리운 상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약한 발전이 있었는지 지금은 그런 안개 같은 것이 내 마음에 끼면 그걸 종종 알아차릴 수는 있다. 하지만 아직 안개가 끼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수준은 못 되는 것 같다.
오늘이 개강일이지만 나는 화/목 공강이어서 오늘은 방에서 자격증 공부를 했다. 시험이 모레여서 그런지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마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반복했다 보니 조금 익은 것도 있는 것 같다. 공부를 하다 쉬고 싶을 땐 세탁기도 돌리고 베개 커버, 이불커버나 매트리스 커버 같은 것을 부분 손빨래를 했다. 그리고 뚜렷한 계기가 없어서 미루던 쇼핑도 했다. 방에 필요한 커튼이라든지 테이블, 의자 같은 것을 주문했다. 모바일쇼핑같이 간단한 것도 미룬 것을 보면 확실히 나는 뭔가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가만히 있음으로써 새로운 문제를 만들려 하지 않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사려면 알아봐야 하기 때문에 "알아본다"는 문제를 만들기가 싫은 것이다. 정말 무서울 정도의 게으름이 의식 저변에 깔려있는 것 같다.
점심을 먹을 때쯤에는 어머니가 주방 용품 같은 것을 몇 가지 보냈다며 카톡을 보냈다. 먼저 잘 연락하는 살가운 아들은 아니기에 나는 카톡이 온 김에 바로 페이스톡을 걸어 안부를 전했다. 어머니는 창문 밖으로 흩날리는 눈발이 대단하다며 보여주시기도 했고 그래서 나는 "예쁘네요, 여기는 비가 좀 올 거 같아요." 하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공부를 하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망우로에도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내일이 나의 실질적인 개강일이다. 재입학 후 네 학기 째인데 이상하게 처음으로 개강이 도무지 실감이 안 난다. 당장 내일 아침부터 일찍 학교에 가서 밥을 먹고 강의를 듣고 시험을 치고 내 할 공부를 하는 생활이 시작된다는 것이 거짓말 같다. 겨울 방학이 이전보다 길었던 것도 아닌데 이런 느낌이 드는 건 아마 이번 겨울방학에는 굉장히 안온한 생활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걱정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강할 때쯤이면 늘 새로운 시작에 불안하고 겁이 났는데 이번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시작 선을 그어주던 라인기에 불안이나 걱정 같은 분필가루가 들어있지 않으니 시작선이 안 그어지는 것이 아닐까?
개강을 하면서 신청 접수를 받기 시작한 교내 장학도 오늘 신청을 마쳤다. 그리고 등록도 마쳤다. 메모를 해놨던 것들이다. 한 학기 시작으로부터 다음 학기 시작까지의 텀이 긴 탓인지 새삼 낯설고 새롭다. 그래서 해야 하는데 잊기도 하고 헤맨 적도 있어서 이번엔 메모를 철저하게 했다. 그래도 몇 번 반복을 하는 동안 어쩔 때는 제대로 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실수하기도 하면서 점점 분명하게 보이게 됐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비하고 준비할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때는 내가 가장 모르는 것을 배울 때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그러고 보면 빌어먹을 컴활 덕에 알게 모르게 사고의 확장이 조금 이루어진 것 같기도 하다. 용기를 조금만 빨리 배웠으면 어땠을까. 못 할 용기에 대해서 조금만 더 빨리 눈치챘다면 인생을 좀 더 편하게 살았을 텐데.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같은 책 제목에 10대, 20대, 30대, 40대 등등이 붙은 것들이 많은 걸 보면 다들 이렇게 후회하며 사는 것이겠지. 일단 학교나 다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