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어제 25-1학기 첫 등교를 했다. 공동 현관을 나오고 주차장에서 벗어나 인도에 올라서서 걷기 시작하자마자 '등교'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자꾸 맴돌았다. 왜 그러는가 싶어 걸으며 생각해 보니 학교 밖에서 학교를 향해 가는 것이 정말로 오랜만에 경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군 휴학 후 복학한 14-1학기 때 했던 남영역-회기역 통학이 마지막 등교였다. 새삼, 새삼스럽다.
약간의 눈발이 쓸쓸함을 더하는 길 위로 20분 정도를 걸어 학생 식당에 도착했다. 아침에 흐리멍덩한 시간을 보내느니 일찍 나가서 조식을 제공하는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강의실로 가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될 테다. 학생 식당은 방학 때는 내 출근이 아홉 시인데 식당도 아홉 시부터여서 이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학생 회관에서 공짜나 마찬가지인 아침밥을 먹으니 그 일도 반가웠다. 조리 도구도 갖추지 못한 원룸에서 지내다 보니 '천 원의 아침밥'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다시금 절감하게 되는 것 같다.
밥을 먹고는 이동해서 교양 건물로 향했다. 칙칙하고 어두운 계단을 오르면서 '하아, 시작이구나.'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그래도 일단 시작되어버리고 나자 오히려 마음이 더 편안한 걸 느낄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물살에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밀려 가는 것 같았지만 그 물살이 나를 밀어주는 힘이 왠지 기분 좋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자기 결정도 중요하지만 약간의 강제성도 중요한 듯하다. 어쨌든 멈춰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고' 있으니까.
09시에 시작인 [고전 읽기:플라톤] 강의는 출석만 부르고 18분 만에 OT가 끝났다. 나는 수업 교재인 『 소크라테스의 변명 』을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곧장 도서관으로 가서 컴활 실기 공부를 했다. 점심때가 되었을 때는 점심을 먹고 전공 건물로 이동했다. [의사결정 모형 및 분석]. 교수님이 말씀은 "그런 거는 아닌데"라고 하시면서 자꾸 그런 거를 하셔서 OT인 듯 OT도 아닌 것을 거의 한 시간 15분 풀로 했다. 그게 좀 지겨웠지만 듣다 보니 이 강의가 지난 학기의 [소비자행동론]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확실히 4학년쯤 되다 보니 조금씩 겹쳐지는 레이어들이 생기고, 겹쳐진 부분은 조금 더 진하게 보이는 일이 생기는 것 같다. '이래서 하나를 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구나.' 생각했다. 깊게 한 것도 아니긴 하지만 어찌 됐건 비슷한 걸 반복을 해야 체화가 된다는 힌트를 봤다.
다음 강의는 24-1학기에 수강했던 [투자론]을 강의하셨던 교수님이 하시는 [금융리스크 관리]였다. 교수님이 인격적으로도 퍼포먼스적으로도 굉장히 깔끔하고 훌륭하셔서 수강 신청을 하게 된 부분이 있었다. 이 교수님은 강의 시간 전에 미리 오셔서 복도의 본인만의 지정 구역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신다. 그 모습이 고독해 보이기도 하고 프로페셔널해 보이기도 하고 멋있어서 사진을 찍었던 적이 있다. 그 상태면 도촬이 될지 모르니 종강 때쯤 사진을 보내드렸다. 교수님도 그냥 누구나처럼 고통 속을 애써 의연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이기에, 타인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자신의 삶의 한 순간을 돌아볼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고 특별한 순간이 아니기 때문에 남기려고도 하지 않는 인생의 대부분인 순간들. 사실은 더 많이 남기고 사랑해야 할 순간들. 1년 만에 다시 보게 될 줄 알았으면 안 그랬을 것 같은데 혼자서 약간은 민망해했다.
세 과목의 OT가 모두 끝나고 디퓨저 향이 마음에 들었던 건강센터에 들렀다. 센터라고는 하지만 사실 양호실 같은 공간이다. 작년에 거기에 인바디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재러 갔었다가 생화 향기가 나는 디퓨저를 알게 됐는데 이사 후 방에 같은 것을 하나 해놓고 싶어 제품 이름을 확인하러 갔다.
자취방에 도착해서 이것저것 택배 온 것들을 풀고 작은 테이블 하나를 조립했다. 커튼을 설치하려고 할 때쯤 친구가 와서 공유기를 설치해 줬다. 친구 좋다는 게 뭔지 알았다. 나는 어떻게 해 볼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어서 방치하고 있던 것을 뚝딱 해결해 줬다. 설명을 다시 부탁하며 들어서 간신히 문제의 원인 정도만 이해할 수 있었는데 내가 못 할 것 같으면 그냥 때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것도 괜찮은 생존 방식이 아닐까 생각했다. 혼자 할 수 있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모든 걸 혼자 해결할 필요도 없지 않나?
오늘은 아침에 학교에서 아침을 먹고 컴활 공부를 하다가 오후에는 시험을 치러 상공회의소에 갔다. 준비가 덜 됐다는 걸 느꼈지만 문제가 좀 쉽게 나오면 요행으로 합격하고 어렵게 나오면 불합격하자는 심산이었다. 내가 웬만한 경우에는 최악을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에 이번 경우에도 실제로는 내 생각보다 어렵게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내가 상정한 최악은 최악이 아니었다. 드문 일이었는데, 어쩌면 그동안 내가 굉장히 안전한 곳에 있었기 때문에 상정한 최악들이 벌어지지 않았던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이렇게 더 압도적인 것이 기다리고 있다는 현실을 알게 됐다.
시험 초반에는 난이도에 당황해서 식은땀이 나다가 중간부터는 이번에는 합격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포기하고 시간이나 때울까 하다가 그래도 푸는 데까지는 풀어보자 싶어서 건드리다 보니 답이 나오는 문제들도 몇 개 있었다. 다만 그렇게 해서는 시간 안에 합격에 필요한 점수를 모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보자마자 식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를 알게 됐다. 그리고 분명히 출제빈도가 낮은 부분들은 어느 정도 패스하고 공부해도 합격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낯선 함수들도 많이 있었다. 문제 화면을 출력하는 모니터 화질이 좋지 않아 글자가 흐리게 보이는 문제나 키보드 문제, 노트북으로 연습하던 엑셀, 액세스 버전과 시험의 버전이 다른 문제 따위들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문제 화면이 오른쪽이 아닌 왼쪽에 있으면 더 편할 것 같긴 했지만.
분할 수도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패배한 직후 시험장을 나와 핸드폰을 켜니 위로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고맙다. 합격을 과연 할 수 있을지 의구심도 들지만 그 말들에 다시 힘내보기로 했다. 그리고 시험장에 서른 명 가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 그 자리에서 합격을 해서 나간 사람은 세 명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결과를 충분히 받아들일만했다. 씁쓸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한 마음으로 혜화로 향했다. 청년기지개센터에서 작년 10월 동안 10회에 걸쳐 진행됐던 "내 마음 글쓰기" 프로그램의 결과물이 나왔다는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간신히 시간 내에 도착해 책을 전달받았다. 수령 서명을 하고 책을 훑어봤다. 내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쩌면 디자인이나 편집하는 분들이 글을 쓰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창작의 고통을 가졌을지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받고 너무 궁금해서 혜화 골목길 한쪽 끝에 착 붙어 느릿느릿 걸으면서 조금 읽어 보았다. 다른 분들의 글을 읽다 보니 이러나저러나 내가 쓴 시, 에세이가 한참 부족한 글이라는 게 느껴졌다. 더 많이 읽고 정성 담아 써야 우물 벽돌 한 칸이라도 올라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연과 인생, 성취와 상실도 천차만별이었지만 결국은 어떤 마음에 모여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란 그런 건가 보다.
서울시 지원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이라 문집『 기지개 모아 무지개 』는 서울시 여러 권역복지센터와 기지개센터에 비치된다. 나도 자기 전에 좀 더 읽어봐야겠다. 복도에서 택배를 집에 들이는 옆집 남자와 눈이 마주쳐 인사를 나눈 나름의 삶적인 순간도 좋은 오늘의 하루였다. 노래 부르는 목소리만 듣다가 얼굴을 처음 봤는데 왠지 가창 스타일과 어울리는 얼굴이어서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