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강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서 그동안에는 못 보고 지나쳤던 폐업한 가게 하나를 마주쳤다. 그러자 처음 대학생이라는 것이 되었던 2010년, 1년을 채 다 보내지 못했던 그 몇 개월의 시간 동안 있었던 일 중 한 가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싸니까."
"싸서 오는 거야 맛있어서 오는 거 아니고?"
나는 오해의 여지를 남긴 내 말실수에 사장님께 굉장히 죄송스러운 마음을 느꼈다. 이 짧은 대화와 그때의 공간, 그때의 내 감정이 당장 눈앞의 일처럼 나타났다.
우리 학교 경영학과 1학년생들은 반이 나눠져 있고 강의 시간표가 정해져 있다. 그날은 같은 반의 동아리 친구들 몇 놈과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같은 해 겨울에 내게 스노보드를 가르쳐주게 될 친구가 제육이 싸고 맛있는 집을 찾았다며 데리고 갔던 날이다. 식당은 단과대에서 학교 밖으로 나가는 쪽문 같은 것을 지나쳐 나가면 만나는 골목 한편에 약간의 반지하 느낌으로 살짝 잠겨 있었다.
식당 안에는 건장한 남학생들이 둘셋씩 많이 있었고, 우리 과 1학년 200명이 모두 알만한 몽골에서 온 예쁜 유학생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두건을 두른 사장님이 그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사이로 부지런히 서빙을 하던 풍경이 떠오른다. 우리가 시킨 밥도 나와서 맛있게 먹다가 나랑 친구가 무슨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밥을 다 먹어갈 때쯤 친구가 찾은 식당에 대한 평가를 하게 됐다. 나는 식당에 대한 칭찬을 하던 중이었는데 그중에 하나로 부담 없는 가격을 짚고 있었다. 지나가다 그 말의 끝만 들은 사장님이 "싸서 오는 거야 맛있어서 오는 거 아니고?", "이모 서운해."라고 하셨다. "아, 아니에요."라고만 짧게 대답해야 했다. 사장님은 바쁜 몸놀림으로 곧바로 우리 테이블을 지나쳐갔기 때문에.
도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못 보고 지나다녔는지 모르겠는 스무 살의 점심이 그렇게 막을 내린 채로 덩그러니 길 위에 놓여 있었다.
폐업한 제육집을 지나서 골목을 계속 걸었다. 사진 속 골목길의 펜스와 인도는 내 기억이 맞다면 올해 구정 때쯤 생긴 것이다. 그리고 나는 2010년에도 저 길을 수없이 지나다녔다. 마을버스도 다니고 차량 통행도 꽤 있는 골목이라 늘 사람이 다니기에 불안한 골목이었던 기억이 난다. 저거 하나가 생기는데 내가 목격한 시간선에서만 무려 15년이 걸렸다. 세월에 대해 생각하면서, 장성한 후 다시 찾아간 고향땅의 변해버린 풍경을 보는 복잡한 심경을 생각해 봤다. 펜스 건으로, 사실 동네의 풍경이 변한 것이 최근의 일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게 돼버리면서 뭔가 덜 감성적이게 되었다. 긴 세월 속에 서서히 그리고 결국은 무참히 변해버린 것이 아니라 올해 초에 뭔가 급격히 바뀐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용납해 줄 만하다고 해야 할지.
아침 메뉴에서도 세월을 느꼈다. 1년 반 정도 학교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생선 메뉴가 나온 것은 비교적 아주 최근의 일이다. 급식 설문조사에서 '나왔으면 하는 메뉴가 있냐'는 문항에 생선을 써냈던 나로서는 이 일을 통해서도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히키코모리였던 나는 나이에 비해 발뒤꿈치가 매끈한 편이다. 10년 동안 걷지를 않아서 그렇다. 그런 나를 제치고, 어릴 적 보았던 엄마와 아빠의 갈라진 뒤꿈치가 여동생의 발에 먼저 나타났다. 그 세월을 보는 일은 조금 부끄럽기도, 마음 아프기도 했다. 갈라질 만큼 딛고 버텨 걷지 않고 살아온 내가 미웠던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