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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고립은둔청년 인터뷰

by 온호

아침

요즘 아침은 제법 쌀쌀하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시원하고 햇빛이 밝아 학교 가는 길이 기분 좋다. 오후에는 좀 덥기까지 하지만 아침저녁으로는 딱 걷기 좋을 만큼 습도도 기온도 적당하다. 오래 이어졌으면 싶은 좋은 시절 속에 있는 며칠이다.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시 이동하다가 엄마랑 같이 등원하는 남자아이를 봤다. 작은 손을 앞으로 내밀어 말아 쥐고 잔뜩 집중한 채로 보도블럭 칸에 발을 맞춰 넣으며 걷고 있었다. 귀여웠다. 블럭 한 칸에 다 들어가기에는 너무 큰 내 발을 보며 마저 걸었다.


고립은둔청년 인터뷰

지난 월요일(4월 28일)에 고립은둔청년에 대한 기사를 준비 중인 기자 분과 인터뷰를 했다. 최근 "그냥 쉼 청년 100만"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보이는 걸 보이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겠나 싶다. 기자 분이 기지개센터 쪽으로 인터뷰 요청을 했던 것 같고, 센터에서는 인터뷰 안 하겠다고 하지 않을 만한 나에게 부탁을 하셨다. 안 할 이유도 없고 못 할 이유도 없고 고립은둔 극복 중인 청년 주제에도 역으로 복지사를 도울 수도 있는 거고 기자도 도울 수 있는 거라는 생각으로 응했다.

인터뷰는 별 거 없었다. 정해진 질문을 가지고 형식적으로 진행하기보다는 흐름에 따라 개인적인 이야기도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나는 몇 번이나 반복했던 혀에 익숙한 이야기들을 새로운 사람에게 반복할 뿐이었다.

다만 기자 분의 말투에서는 그의 성격을, 말에서는 그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를 통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됐다. 기자 분이 "뭐라도 하면 되는데, 할 수 있는데, 사실 일할 데는 많은데 루저같이 느껴져서 눈을 못 낮추시나들."같은 말을 할 때는 사람의 기질적인 차이가 고립은둔청년과도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감정적인 부분, 관계적인 면에서 어떤 내성이나 역치의 타고난 차이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감정의 미시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의 차이, 언표에 대한 의미부여와 해석 능력의 차이와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단순히 우울하고 자존감이 낮아서 상대방의 의도를 부정적으로 해석하거나 자기 파괴적인 의미부여를 하는 경우도 물론 많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영역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예민한 감성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고립은둔 가능성에 대한 여러 요인 중 한 가지에는 타고난 방어막을 가진 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우월한 것이고 반대는 열등한 것인지에 대한 계산도 따져 봤다. 건강한 것은 맞는 것 같지만 단정적으로 우월하다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기자 분 말씀으로는 전에 본인과 인터뷰했던 청년이 자기와 다시 만나기 싫다고 해서 자기가 뭔가 청년을 불편하게 했다는 것은 알겠다고 했지만 뭐가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걸 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알 것이다. 하지만 기자 분은 아마 어쩌면 평생 모르고 살 수도 있다. 본인이 그런 성격이 아내와의 갈등의 원인이 될 때도 많다고 한다. 세심하고 예민한 성격이 과도하게 자기를 잃어버리고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리는 잘못된 착함으로 발현되지 않고 건강한 다정함으로 발휘될 수 있다면 저런 문제들을 덜 겪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분명한 강점이고 우월함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함께 역으로 가면서 기자 분은 내게 취업 준비 중인 청년을 소개해줄 수 있겠냐고 했다. 아마 나는 아직 학생이고, 취업과 직장 문제로 고립은둔하게 된 것이 아니니 내 이야기는 현재 초점을 맞추고 있는 고립은둔 청년 문제의 원인과 맞지 않아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이미 몇 번 다른 청년들과도 인터뷰를 해봤지만 특이한 경우의 분들만 만나서 취재가 오래 걸리고 있다고 했다.

특이한 경우... 나 같은 경우는 내가 생각하기에 낮은 자존감, 가정환경, 기질 같은 것들이 원인이다. 그리고 고립은둔 청년 중에 취업, 직장 문제로 고립은둔 하는 청년은 전체의 32% 정도이다. 3명을 인터뷰해야 한 번 정도 찾고 있는 경우를 만날 것이고 운이 없으면 더 많이 시도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 이유가 원인이 아닌 사람이 10명 중에 7명이나 된다는 것인데 그러면 기자님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기자 분의 동네 동생도 6년째 방에만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내 친척 중에 한 명도 그렇다. 학교에서 한 교수님과 대화하다 교수님의 아들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아리 지원 사업에서 만난 분의 사촌도 고립은둔청년이라 했다. 그만큼 주변에 정말 많이 있다는 것이고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것이다.

100만 명 중에는 실업 급여나 국민기초생활 수급 급여에 만족하며 고립은둔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모가 제공하는 안전한 환경에 취해 나갈 노력도 하지 않는 게으르고 한심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나 과거의 겪은 사고, 사건 때문에 사회와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이고 그런 사람들 또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고립은둔청년 전체를 복지 혜택이나 강단 없는 부모가 키운 괴물로 보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청년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오는 것을 방해하는 것에는 그런 부정적인 편견의 영향도 크다.

기자 분에게 다 하지 못했던 말을 여기서 해 본다.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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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나서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독서도 하고 서울 유람도 했었다. 요즘은 어딜 가도 초록초록한 곳이 많다. 원래 눈이 폭신하게 쌓이는 하얀 계절을 좋아했지만 최근 1년은 이런 초록색들이 주는 싱그러움이 참 좋다. 명동성당에서는 고해성사를 하려고 했는데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막 들어가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천주교 세례를 안 받았으면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광나루 쪽에서는 유독 포르셰가 많이 보였던 게 생각난다. 드라이브하러 오기 좋은 곳인가 보다. 나는 따릉이를 처음 타 본 날 따릉이를 만끽하려고 저녁에도 광나루에서부터 중랑천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 5호선 구간 언덕에 자전거가 다니도록 만들어 놓은 터널이 뭔가 영화에서 나오는 벙커 가는 길 같고 비밀스러워서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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