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주말
시험 마지막날인 금요일을 앞두고 새벽같이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센터 오픈 시간이 다 돼 갈 때쯤에는 가서 고민할까, 방에서 공부할까 고민을 했다. 방에서 공부를 계속 잘할 수 있을지 의심이 되기 때문이었다. 일단 방에 있으면 발가락을 자유롭게 만질 수 있다. 신발을 신고 있는 곳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편한 내 방보다는 다른 외부 공간이 공부하기 유리한 이유가 몇 가지는 더 될 것이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셔서 잠이 달아난 걸 느꼈다. 오전에는 졸려서 힘들었는데 오후 1시쯤 돼 가니 집중이 딱 잘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수잔나한테 전화가 왔다. 밥 먹었냐고 어디냐고 하길래 먹었다고, 방이라고 했더니 2주 전쯤 까먹은 집들이를 지금 하겠다는 것이었다. 수잔나는 김밥을 사들고 와서 먹었다. 사람이 자기 형편 될 때 약속 잡는 거야 당연하지만 시험기간에 미리 말도 없이 그러는 건 달갑지 않았다. 수잔나는 본인 말대로 좝도 세 개나 되고 이미 큰 딸은 대학도 보냈으니 시험 성적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졸업은 할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한국을 경험하는 명분일 뿐이다.
그렇다고 손님이 와있는 방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수잔나가 최근 하고 있는 선한 일에 대해 말을 했다. 굉장히 희생적이고 아무나 할 수 없는 큰 사랑이 필요한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일 시험 세 개가 있는데 공부를 많이 못해서 새벽 다섯 시부터 공부를 하고 있다는 나에게 왜 그런 말을 상세하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시험 전 뜨는 시간에 시간 때울 곳을 찾아왔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쉽게 떠나지가 않았다.
이성적 판단이 감정적 평가보다 언제나 한 발 뒤늦게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으며 나타나는 일도 익숙해졌다. 요즘은 좀 늦더라도 나타나주는 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봤으니 수잔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고, 뜨는 시간이 아니었으면 방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역시나 2주 전 목요일 저녁에 오기로 하고 까먹고 오지 않았다가 공부에 집중이 너무 잘 되고 있을 때 와서 세 시간을 머물다 간 것은 불쾌했다.
복습이야 조금씩 그때그때 해놓는다지만 시험 치기 전에는 마인드맵을 만들면서 개념들이 정리가 되어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시험 범위 1 회독씩은 다시 하면서 단기 기억에 넣을 것들도 바쁘게 넣어야 한다. 시험을 치기 전 진도를 나가는 두 달 동안에는 엉성하더라도 복습을 하면서 이해를 해둔다. 초벌인 셈이다. 시험 전 2주 전 정도부터는 슬슬 재벌을 시작한다. 그리고 당일 새벽부터 일어나 외울 것들을 다시 한번 외운다. 이 날도 새벽부터 정의들을 외웠다. 보통은 개념을 설명해 주고 단어를 쓰라고 시키지만 나는 개념 정의를 외운다. 이러면 ox문제로 나와도 어느 부분이 틀렸는지 맞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고 개념에 대해 설명하라는 서술형 문제가 나와도 쓸 수가 있다.
이번 학기는 전에 들었던 강의들과 이어지는 강의들이 많아서 그런지 노력한 것보다 시험을 수월하게 친 것 같다. 평화와 갈등은 과거시험처럼 서술형 한 문제를 푸는 문제가 나왔다. 집단 정체성이 어떻게 갈등을 만드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평화적인 해결방법이 무엇인지 논술하라는 것이었다.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내가 시험지를 건네드릴 때 교수님이 "문제가 많이 어려웠나요?"하고 물어보셨다. 아마 앞에 시험지를 내고 나갔던 많은 학생들의 답안지 작성 상태가 좋지 않았나 보다. 논술형으로 나올 것이라는 것만 알려주고 주제나 범위 같은 것을 알려주지 않았으니 챗GPT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요즘 학생들에게는 즉석에서 문제를 받아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뭐 '이렇게 써도 괜찮나?' 하면서 썼고 분량이 딱 맞춘 것에 만족스러워하는 수준에 그쳤다.
저녁을 먹고 아마 10시 전에 렌즈도 빼지 않고 씻지도 않은 채로 잠들어버렸다.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가 다시 자고 늦은 새벽에 일어났다가 다시 잤다. 시험 기간 동안 그래도 압박감을 받으면서 농축적인 날들을 보냈더니 피로감이 쌓였던 것 같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아점으로 떡국을 끓여 먹었다. 시험도 끝나가겠다, 자취방 생활리듬에 적응도 했겠다, 외식비 부담도 있겠다 본격적으로 슬슬 취미 삼아 요리를 해 먹기 위해 식재료 몇 개를 사서 냉장고에 정리해서 보관해 놓았던 것이다. 음식을 직접 해서 먹으면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참 좋다. 오후에는 우유에 얼그레이 시럽을 넣고 계핏가루를 뿌려서 시원하게 한 잔 마셨다. 홈카페에 대한 로망이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메뉴를 하나씩 늘려가면 좋을 것 같다.
토요일 저녁에도 10시 전에 잠들어 버린 것 같다. 새벽에 깨서 핸드폰 시간을 확인할 때 9시 50분에 온 메시지를 보고 알았다.
이틀 밤동안 푹 쉰 거 같아서 아침에 일어나서 주중처럼 똑같이 맨몸 운동을 했다. 그리고 8시부터는 중랑천을 좀 뛰고 왔다. 아침 햇살에 가벼운 달리기를 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했다. 샤워 후에는 치즈계란말이를 만들어서 찌개와 반찬삼아 밥을 먹었다. 남은 계란말이는 새로 산 반찬통에 보관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냉장고에 뭔가 짜다라한 양념이나 반창통이 늘어나는 것이 생활감이 있어 좋았다.
좁아서 물이 다 밖으로 튀어버리는 싱크대에서 조심조심 설거지를 하고 매트리스를 머리-다리 반대방향으로 돌려놓고 생일 축하를 위해 건대로 향했다. 도삭면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따릉이를 타고 한강을 따라 광진교 8번가로 이동했다. 따릉이는 재입학하려고 서울로 올라왔던 때부터 '타봐야지, 타봐야지' 하다가 오늘 처음 타게 됐다. 자전거에 올라타려고 할 때부터 미소가 나오던 것과 타면서도 싱글벙글인 걸 보면 확실히 난 뭘 타는 걸 좋아한다.
월요일까지 수업이 없어서 이번 주말이 긴 휴가같이 느껴진다. 오늘 마음이 참 편안하다.
1. 화장실에서 재치기를 하고
- 어릴 때 아빠 재채기 냄새를 싫어했는데 내 재채기 냄새가 아빠랑 똑같네.
2. 팔굽혀펴기를 하다가
- 말을 해봤는가? No
- 그 상태에서 머릿속에서 혼자 생각을 계속 키웠는가? Yes
그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