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차원이 달라 병"이라는 것이 있다고 우스갯소리들을 한다. 여행지에서 경험한 것들이 한국의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고 과장되게 높이 평가하는 현상을 병에 빗댄 표현이다. 실제로 차원이 다를 정도로 뛰어난 것들이더라도 지나치게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경우에도 해당한다. 일본을 다녀온 사람들의 차원이 달라 병 증상 중에 하나로 "일본 하늘 청량함 차원이 달라."가 있다고 한다. 이 유머를 처음 알게 된 날 아침에 학교에서 밥을 먹고 강의실로 이동하는데 그날따라 하늘이 정말 파랬다. 나무의 쨍한 초록색과 하늘의 밝은 파란색의 조합이 예뻤다. 일상생활을 할 때도 여행지에서 처음 만나는 것들을 보듯 호의적인 마음으로 유심히 보면 가까운 주위에서도 예쁜 것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지난주 초쯤이었던 것 같다.
지난 목요일(5월 1일)에 번지점프를 했다. 스릴을 즐기는 성향을 아마 타고난 것 같은데, 그런 거치고 번지점프를 직접 해 보는 데에는 너무 오래 걸렸다. 처음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후로 20년 정도 됐다. 시험도 끝났고 부처님 오신 날 연휴도 시작되는데 뭘 할까 하다가 공강인 목요일에 혼자 아침 일찍 가서 하려고 수요일에 이용권을 샀다. '혼자 가면 사진은 안 남겠네.'라는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그래도 달리는 4륜 바이크에서 뛰어내리던 때도, 절벽에서 프런트 플립을 하며 다이빙을 하던 때도, 유격 훈련 가서 훈련병 중 가장 먼저 절벽 레펠을 하던 때도, 그네를 타고 360도 돌았던 때도 사진으로 남아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아쉽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재밌기만 하고 내 기억에만 생생하게 남는다면야 사진이 없어서 자랑하지 못하는 건 그다지 상관없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이번에는 운이 좋아 사진이 남았다. 마침 시간이 되는 친구를 발견해 같이 가게 된 것이다. 비가 와서 여러모로 여의치 않은 것들도 많았지만 간 김에 남이섬 구경도 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비가 그쳐서 배를 타고 나가 점프를 하러 갔다. 점프대에는 같이 올라갈 수 없었는데, 그래서 친구는 아래쪽에서 위쪽 상황도 모르는 채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점프를 기다리며 동영상 촬영을 해줬다. 나도 아래쪽 상황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가 어디 있는지를 몰랐는데 점프 후에 나를 찍고 있는 걸 보니 반가워서 웃음이 났다. 이럴 땐 가족보다도 친구가 나은 것 같다. 가족들이었으면 귀찮은 티를 많이 냈을 것 같다. 많이 고마웠다.
점프에 관해서는 뭐라고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막상 아래로 북한강이 보이는 점프대 끝에 서서 카운트 다운을 기다릴 때는 무서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걸 계속 보고 있으면 안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것 같아서 카운트 다운 숫자가 세 번째가 됐을 때 얼른 뛰어버렸다. 발로 점프대를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가서 몸이 공중에 떠있는데도 직원 분 구령은 계속되길래 '아 좀 빨리 뛰었나 보네.'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게 번지점프를 하고 처음 한 생각이었다는 게 웃겼다.
떨어지고 있을 때는 '어 이거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네.'싶은 순간이 있었다. 살면서 한 번도 못 느껴 본 감각이었다. 다이빙을 할 때는 뱅글뱅글 도느라 그랬을 거고 레펠을 할 때는 온전한 낙하도 아니고 절벽을 보고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아래를 향해 낙하하는 순간, 좀처럼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 북한강 수면을 끊김 없이 쳐다보고 있는 동안 영원을 향해 뛰어내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딘가 다른 정신적인 차원의 공간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zone이라고 부르는 공간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몇 번 위로 튕겨 올라갈 때마다 위가 쏠리는 느낌이 들어서 그게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보트에 있는 직원분이 대롱거리던 나를 낚아챘을 때 위에서는 줄을 늘려서 내가 보트에 내려 탈 수 있도록 했다. 보트에 앉아서 상기된 기분을 차분히 느끼면서 '재밌는데 너무 짧게 끝났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게 도대체 뭐였는지 생각했던 것 같다. 이용료가 좀 싸고 위치가 가까운 데 있었으면 자주 했을 텐데 아쉽다 하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땅으로 돌아왔다. 번지점프했으니까 다음 단계로 넘어갈 기회도 물색해 봐야겠다. 번지점프할 때만큼 오래 걸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