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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집사 체험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by 온호

여동생이 2주 동안 신혼여행을 가게 되면서 신혼집에 있는 고양이를 돌봐줄 수 있는지 다급하게 물어봤다. 평일 저녁에 이틀에 한 번 정도는 시간이 돼서 그렇게 해 보겠다 했다. 아주 어릴 때는 강아지나 고양이, 거북이, 토끼, 병아리, 메추리를 키워봤는데 너무 오래된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짐승들이 좀 무서워졌다. 그러다 이번 계기로 오랜만에 짐승과 계를 맺게 된다는 생각에 오늘 하루 종일 설렜다.


현실은 기대와 너무 달랐다. 내가 거실 불을 켜러 스위치가 있는 벽으로 가니 하악질을 했다. 고양이는 왜 하필 그쪽 벽에 있었던 걸까. 불을 켜러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내 냄새를 어느 정도 맡아보고 아무 일 없었는데.


추르를 접시에 담아서 갖다 주는데도 하악하악 하더니 요란스럽게 푸드덕거리다 다른 방으로 도망가버렸다. 지금은 침대 매트리스와 벽 사이 공간에 들어가 있다. 동생 말로는 원래 겁이 많아서 그렇다는데 집사 체험은커녕 근처도 못 가보고 있다. 거절당한다는 건 원래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것도 이것대로 제법 서운하다.


하악거릴까 봐 무서워서 대도 못 가고 소파에서 자는 신세다. 확실히 고양이가 주인님은 맞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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