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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지능

by 온호

조금 전 [고전 읽기-플라톤] 강의를 들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학생들이 돌아가며 읽다가 교수님은 어느 지점에서 지능과 추상화에 대한 말씀을 잠깐 하셨다. 첫 강의 때도 에피스테메를 위한 이성의 힘 이야기를 하다가, 사물을 정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고 그건 지능과 관련이 있다고 하셨다. 감각적인 눈으로는 한 면밖에 보지 못하니 360도로 보려면 이성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예로 들었던 것이 지도 읽기였다. 눈으로 보이는 면만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공간을 다각도로 그려며 지도를 읽는 능력이 간단하게 지능을 알 수 있는 예시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지독히도 못 한다. 분명 타고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왜냐면 초등학교 때 IQ검사 시험지에 그런 능력을 요하는 문제들이 나오면 풀지 못했던 것이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도 공간적인 것이나 입체적인 문제를 힘들어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심지어 모바일 게임에서 던전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갈 때도, 지도에서 가리키는 방향과 캐릭터의 몸이 향할 방향을 일치시키는 것이 매번 어려웠다. 운전을 할 때도 지도에 나타난 것과 현실의 공간을 대조하며 보는 것이 아니라 내비게이션의 좌상단에 나타난 지시만을 따르곤 한다. 유람을 목적으로 지하철로 서울을 돌아다닐 때도 공간, 지형, 방위(方位)를 그려 보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기호화된 지시사항만을 읽기만 한다. 여러 번 다닌 곳도 '별일 없겠지.' 싶어 지도를 안 보고 나를 믿고 가면 헤매버리고는 만다.


어릴 때부터 머리를 쓰지 않아 비효율이나 낭비가 발생하면 몸으로 때우곤 했다. 운동도 무식하게 한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길을 잘못 들면 뛰어서 시간을 맞추면 그만이었고, 공부할 때 이해력이 딸리면 체력빨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근데 오늘은 그동안 이렇게 살아온 바람에 이성적인 힘을 못 길렀다 싶어 기분이 착잡하다.


주어진 지시만 성실히 수행하고 몸으로 때우다가는 내 생사여탈권이 이성이 뛰어난 시스템의 지배자의 손에 쥐어진다는 걸 암시하는 말을 어제오늘 연속으로 들었다. 그래서 감정, 감각에 가중치를 부여받은 나는 열등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대로는 남은 평생을 자유를 박탈당한 채 노예로 지배당하며 사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들었다.


그러고나서는 현대 사회의 많은 병폐들은 서양의 합리론이 불러온 폐해라고 주장하던 책임경영 교수님을 떠올렸다. 독서가 시스템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 혁명이라고 말하던 빨간책도 떠올렸다. 너무 이성적이고 똑똑해서 역으로 멍청해지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어찌 됐건 지금 배우는 내용, 그걸 설명해 주는 교수님은 고전철학의 입장을 따르는 것이니 낡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떠올려 봤다. 배우는 것과 반대되는 주장들을 떠올려 본 것이다. 뭐가 맞을까.


지난주에 『데미안』을 읽었다. 작년 1학기에 수강했던 [불교와 정신분석학] 강의에서 헤르만 헤세가 융의 친구였고 융의 개성화나 대극 합일 개념에 영향을 받아 그의 『데미안』 이나 『싯다르타 』에 반영이 돼있다고 들었다. 거기에 관심이 생겨 독서 리스트에 넣어놓았었다. 그러다 1년이 지나서 데미안이라는 이름의 향수를 가진 친구가 그 향수에 대한 설명을 해줬고 그게 계기가 되어 『데미안』을 뒤늦게 빌려 보게 되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사람은 그 하나하나가 자연의 단 한 번의 소중한 시도"

"세계의 여러 현상이 그곳에서 오직 한번 서로 교차되며, 다시 반복되는 일은 없는 하나의 점인 것"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방 밖으로 나온 지 2년이 다 돼 가지만 나는 아직도 개성화를 이루지 못하고 생각이 이 방향 저 방향으로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처음 했던 고민을 아직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내 안에서 솟아나오려는 것을 따라 사는 것이 겁도 난다. 욕심인지 꿈인지, 단일 정답인지 복수 정답인지도 고민한다. 일단은 감정, 감각, 욕망 자아를 따르는 것을 참아 봐야겠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당위 자아를 따라 사는 훈련을 해야겠다. 왜냐면 내가 히키코모리였고, 10년이나 고립은둔 생활을 한 것은 이성보다는 감정을 따랐던 결과다. '나가야 하는데, 살아야 하는데'라는 이성이 시키는 것이 아닌 '무서워, 싫어, 죽고 싶어.'라는 감정이 시키는 것을 따라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얻은 것도 있지만, 후회하는 것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몇 년만 더 있으면 불혹(不惑)인데 참 갈 길이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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