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석
오늘따라 학교 가기가 정말 싫었다. 그래서 아침밥 먹는 시간을 누워 있는 시간으로 썼다. 학교 다닌 이후로 학교 가는 날에 아침을 거른 것은 거의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처음은 아마 아닐 것이다.
샤워를 급하게 하고 겨우 1교시 시간을 맞춰 강의실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가방에 들어 있던 교회 전도용 휴지를 꺼내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강의실을 둘러보니 평소보다 자리가 확연하게 텅텅 비어있었다. 출석을 부르던 교수님도 "오늘 왜 이렇게 결석률이 높지?"라고 하셨다. 이 맘 때가 딱 학교 가기 싫은 시점인 걸까. 이번에도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이 위안이 됐다. 이쯤 됐을 때 좀 힘들어지나 보다.
중간시험을 친 이후 강의 평가를 했었다. 그리고 지난 한 주 동안 교수님들이 수업 시작할 때마다 강의 평가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셨는데 전부 내가 썼던 서술형 강의 평가에 대한 리뷰였다. 생각보다 다른 학생들은 강의 평가의 서술형 부분을 잘 안 남기는 모양이다.
강의 평가 피드백을 통해 수업이나 수업 운영에 대해 내가 가졌던 생각과 거기에 대한 교수님들의 진지한 생각을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생각이 짧았다 싶어 반성이 되는 부분도 있었고 여전히 껄쩍지근한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 내가 좀 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수님이나 수업에 대해 부정적으로 봤던 부분은 '왜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됐을까?' 하며 내 생각과 반대되는 경우들을 떠올려 봤다.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나고 조금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음식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보냉백에 들어있다 해도 현관 앞에 오래 방치시켜 놓기는 걱정이 된다. 특히 오늘같이 더운 날에는. 택배에는 볶음밥 세트, 카라향 한 상자, 혼합 견과 두 통, 포기김치가 있었다. 엄마가 내 자취방을 보고 간 이후에 냉장고를 채우려고 보낸 것들이었다.
엄마가 냉장고를 들여다볼 때 분명 "뭐 사 보내지 마세요."하고 말을 했었지만 소용없었다 보다. 택배 상자를 집 안으로 들일 때까지만 해도 잘 참았는데, 냉장고 정리를 하기 위해서 포기김치를 좁은 싱크대 위에서 작은 도마 위에 놓고 썰 때는 살짝 짜증이 났다.
카라향도 양이 많아서 분명히 일부를 썩힐 거 같았다. 맛을 보면서 세 개는 얼른 까먹고 냉장고 채소칸에 들어갈 만큼은 모두 넣어 버렸다. 그리고 나머지는 청으로 만들었다. 다이소에 청을 담을 유리병을 사러 가는 김에 평소에 짜다리 필요했던 것들도 사 왔다. 엄마가 보낸 카라향 덕에 어찌 됐건 체크 리스트를 많이 지우게 됐다.
이왕 집안일을 시작해 버린 김에 밥을 먹고 나서는 에어컨 필터 청소를 했다. 슬슬 에어컨을 틀어야 할 날씨도 돼가는 것 같았고, 에어컨 청소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미뤄둔 지가 제법 됐기 때문이었다. 이불을 치워 놓고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에어컨 뚜껑을 열어 보니 필터에 갈색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전에 살던 사람은 에어컨을 안 켜고 살았나 싶을 정도였다. 더럽게 느껴졌지만 비위를 키울 요량으로 침착한 마음을 유지하며 깨끗하게 씻어서 말렸다. 그리고 다시 필터를 제자리에 끼우고 에어컨을 틀었다. 시원해서 그런 것인지, 묵은 먼지와 함께 묵은 숙제도 해치워서 그런 것인지 아무튼 매우 후련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누리마실을 다녀왔지만 후기를 남기지 않아 뒤늦게 남겨 본다.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가격이 마뜩잖기도 하고 이국적인 음식들도 이제는 작년 누리마실을 포함, 여기저기서 제법 접해 봤기 때문에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 날씨는 너무 덥고, 사람도 많아서 구경하기 쉽지 않았다. 조그만 음식 하나 사 먹는 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전에 경동시장에서 엄마랑 큰누나랑 함께 식사를 배부르게 하고 온 상태여서 더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눈으로만 축제를 구경하다 독일 부스에서 아내인 미초바와 함께 있던 빈지노를 본 것이 인상 깊었다. 빈지노는 앞으로 아기띠를 하고 아기를 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가정적으로 보여서 좋았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 축제였지만 아무도 빈지노에게 아는 척하거나 사진 요청을 하지 않았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사람들이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 같아 그것도 좋아 보였다. 그렇게 독일 부스를 지나쳐서, 작년에 맛있게 먹었던 인도네시아의 리졸을 맛봤고 닭근위 꼬치처럼 생긴 작은 양꼬치도 사 먹었다. 양꼬치 시즈닝이 사고 싶어진 순간이었다.
나오면서 누리마실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고 신제품인 듯한 컵라면을 두 개 받았다. 만약에 내년에도 오게 된다면 천막 밑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얼마나 미리 와있어야 할지 생각하다 말았다. 이건 내년이 돼서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