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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따릉이

by 온호

'내 빵댕이 어떡해'

요즘 이동할 때 따릉이를 탈 만한 거리면 따릉이를 타고 이동한다. 일단 매우 재밌고, 잡생각에 절여지고 있는 뇌를 건져가지고 말려주는 것 같은 효과도 있다. 배차 간격 타이밍 운빨이나 역 안에서 이동하고 환승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자전거 타고 가는 것이 더 빠르다는 것과, 비용도 500원 더 저렴하다고 말하는 이성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지지해 준다. 그럴 때면 나는 근처 따릉이 대여소로 향한다.


어제는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저녁에 혜화에서 청량리까지 자전거를 타고 이동했다. 사소한 문제라 함은 첫 번째로, 안장 위에 얹여지는 내 엉덩이 부위에서 땀이 나는 바람에 바지에 지도를 그린 것이다. 리버스 지도라고 할 수 있겠다. 바지는 고구마 색 같은 개량한복 바지였는데 젖으면 젖은 만큼 까맣게 변해 버려 숨길 수가 없었다. 고대생으로 붐비는 안암동의 좁은 인도 위를 자전거를 끌고 걸을 때는 내 바지 빵댕이가 젖어 있는 것을 사람들이 보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를 생각하고, 나는 그저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자전거 타다가 바지가 땀에 젖어버린 땀쟁이 아저씨 한 명이라는 사실을 생각했다. 다행히 바지는 자전거를 반납하고 걸어 다니니 생각보다 금방 말랐다.


두 번째 사소한 문제는 대여소에다 따릉이를 세워놓고 분명 잠금장치를 내려서 반납했는데 앱에서 반납 처리가 안 된 것이었다. 처리가 안 된 것을 모르고 그냥 대여소를 떠났다가 추가 요금이 부과된다는 알림을 받고 그제야 문제가 생긴 걸 알게 됐다. 고객센터에 문의 전화를 걸었는데 대기자가 18명이 있었다. 핸드폰 상단에 뜬 수화기 표시와, 그 옆에 흐르고 있는 시간이 15분이 넘을 때까지 통화연결음 캐논을 들으면서 기다렸다.


그러다 겨우 상담원 분과 연결이 됐다. 지금 이런 상황이다 하고 설명을 드렸더니 반납한 대여소 이름을 알려 달라고 하셨다. 초행길이었던 데다가 그 와중에 통화하면서 걷다가 길까지 잘못 든 바람에 반납 대여소가 어디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상담원 분은 기억이 안 난다는 나를 차분히 어르고 달랬다. 그리고 주변에 뭐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이런저런 시도 끝에 내가 반납한 대여소는 육교 밑에 있었다는 걸 떠올려냈다. 그리고 내 현재 위치 근처의 따릉이 대여소 이름을 이것저것 다 불러드리니 특정 대여소가 육교 밑에 있다고 확인해 주셨다.


내 앞에 있던 문의 전화 대기자 18명이 빠지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납득이 되면서 동시에 상담원 분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하실 텐데도 친절하게 응대해 주셨다. 부과된 초과 요금은 환불되도록 처리해 주겠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기도 전에 따릉이가 반납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왔다. 덕분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할 수 있었고 따릉이 정기권을 결제해야겠다는 생각이 한층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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