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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생존 취미

by 온호

생존 취미

오늘 저녁을 해 먹고 요리가 취미라면 사는 것이 취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 됐건 살려면 먹어야 되니까.


네 시 15분 강의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어제저녁에 나온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갰다. 그리고 야매 브리또를 두 개 만들었다. 하나는 불고기가 들어간 것, 다른 하나는 돈까스가 들어간 것. 네모 모양으로 자른 또르띠야 위에 케첩을 바른 후 볶음밥을 넣고 고수, 청상추, 불고기, 돈까스를 넣고 큐민 가루를 친다. 거의 안 말리지만 김밥 말듯이 말아서 풀리지 않게 손으로 잡고 먹었다.


고수를 좋아하는 친구 덕에 사 둔 고수를 상하게 해서 음식물 쓰레기봉투로 들어가게 하고 싶지 않아서 고수와 청상추로 샐러드를 만들었다. 며칠 전에 만든 레몬청이 있어서 그걸 좀 넣고 먹었더니 생각보다 맛있었다. 살면서 레몬+고수 조합의 음식을 먹어 본 것은 비교적 최근이지만 먹다 보니 적응이 되는 것 같다.


또르띠야를 네모나게 만드느라 생긴 자투리를 어떻게 먹을까 하다가 대충 버터 넣고 설탕 넣고 우유 넣어서 캬라멜을 만들었다. 혼합 견과가 있어서 일단 먼저 만들어지고 있는 캬라멜 대부분에 그걸 먼저 넣어서 비벼주고 후라이팬 한 켠에는 남은 캬라멜 소스가 자작하게 됐을 때 또르띠야 쪼가리들을 넣어서 구웠다. 캬라멜 팝콘이랑, 나 아주 어릴 때 할머니가 튀긴 떡국 떡에 설탕 묻혀 만들던 간식 같은 느낌으로 한 번 만들어 본 거였는데 둘 다 맛있게 잘 됐다.


식사에 어쩌다 디저트까지 해 먹고 생긴 설거지들을 빠르게 다 한 후 양치를 하고 세수하고 발을 씻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와서 받아 놓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물을 마시면서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요리가 취미라면 사는 것이 취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 됐건 살려면 먹어야 되니까. 그리고 준비하고, 요리하고, 치우고 하는 것들이 시간이 많이 걸려서 비효율적이지만 나는 이 비효율을 안고 살아갈 거라는 생각도 했다. 나라는 캐릭터는 초기화를 할 수 없는 캐릭터지만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요리 콘텐츠를 버리고 효율 추구형 캐릭터 육성을 해봤자 난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중랑 서울장미축제

한 일주일 전쯤, 자전거를 타고 중랑천을 통해 집을 돌아가는데 장미가 굉장히 풍성하게 피어있었다. 혼자 보기 아까워 자조모임 단톡방에 같이 구경하자 했더니 몇 분이 응하셨다. 근데 알고 봤더니 그 장미들을 가지고 중랑천에서 서울장미축제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는 그냥 4km 정도 되는 구간을 함께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장미 구경을 하려 했던 것이 본격적인 장미 축제 구경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창동역에서부터 시작해서 태릉입구역, 겸재교, 회기까지 내려오면서 축제와 장미 구경을 했다. 한 청년 분은 1,000원을 내고 즉석 뽑기를 했는데 하나밖에 없는 1등을 뽑았다. 스테이플러 심으로 집혀 있던 종이를 펼치자 거기에 "1등"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런 일도 있구나.' 싶어 괜스레 신이 나고 활력이 돋았다. 다른 부스들 중에서는 엄청나게 탱글탱글한 수제 젤리를 팔던 곳과 디퓨저를 팔던 부스가 인상 깊었다.


장미밭에서 핸드폰 사진도 남기고 즉석 촬영 부스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청년들을 처음 봤을 때는 사진 찍는 것 자체도 심리적으로 만만한 일이 아니었는데 2년 가까이 함께 하다 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다. 사진을 다시 보다 보니 표정들이 편안하다는 걸 깨닫고 알게 된 사실이다.


배봉산 둘레길을 조금 걸어서 회기역 파전 골목에 도착했다. 자조모임을 하면서 몇 번 갔었던 이모네 왕파전. 저녁으로 그렇게 파전과 막걸리를 조금 하고 계산할 때는 이모님의 고충을 조금 들어드린 대가로 할인까지 낭낭하게 받으며 나왔다. 그리고 내 방에서 소소하게 2차를 조금 더 하게 됐다. 카라향으로 만들어놓은 과일청이 있어서 손님 음료 대접하기가 좋았다. 그리고 몇 가지 얄구진 것들을 하나씩 요리해서 내놨는데 청년들이 생각보다 맛있게 먹어줬다. 요리를 시작할 때는 신났고 요리를 하면서 서있을 때는 좀 피곤했는데, 마지막 음식이 끝나서 이불에 누울 때는 너무 뿌듯하고 안심되고 재밌었다.


목 아픈 자세로 잠이 들어버린 나를 깨워준 청년들과 같이 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개찰구에서 조심히 가라고, 즐거웠다며 인사를 나눴다. 청년 둘이 개찰구 너머에서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작아지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으니 마음이 왠지 모르게 감동스러웠다. 그 둘의 모습이 너무나 평범하게 즐거움과 편안함 속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똑같이 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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