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오렌지레몬 나무 하나가 잎이 다 떨어졌었다. 화분의 흙 색깔을 보면서 물을 주던 시기에 식물을 바싹 말리면 갈증이 나서 물을 더 맛있게 먹을까 하는 느낌으로 며칠 더 놔뒀더니 며칠 차이로 급격하게 잎이 파사삭 말라, 나무에 손가락만 살짝 갖다 댔는데 잎이 줄기에서 똑똑 다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기분이 꽤나 허탈했다. 작년 3월 25일에 택배로 받아 1년 넘게 키우면서 꽃도 몇 번이나 피고 지고 주황색 열매도 맺었던 화분인데 겨울의 나무보다도 더 앙상한 모습으로 줄기만 남아버린 걸 보니 '한 순간이구나.' 하며 작은 허무감을 느꼈다. 그즈음에 나도 내 자신을 좀 못 돌볼 때였는데 화분이 그 영향을 받은 것인가 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내 신세가 살짝 처량하기도 했다.
그래도 줄기는 멀쩡한 초록색이기도 했고 식물이 그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뒤늦게나마 물을 듬뿍 줬다. 흙이 진한 색으로 변하며 숨 죽이듯 낮아지는 모습을 기분 좋게 보면서 올라오는 흙냄새를 맡았다. 흙이 다 머금지 못할 만큼의 물을 줘 버린 바람에 화분 받침 위로 흙 섞인 물이 넘쳤다. 걸레로 그 물을 닦아낼 때 왜인지 기분이 좋았는데 다 말라 떨어진 잎을 계기로나마 미뤘던 화분 물 주기를 했다는 느낌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가지 끝마다 다시 새 잎들이 나서 한창 자라고 있다.
어제는 요리를 하면서 급하게 물을 끓이려다 커피포트를 와장창 깨 먹었다. 코드 거리가 모자랄 수 있다는 걸 알았는데도 마음이 급해 그냥 코드를 콘센트로 가져갔고 딸려 온 커피포트가 테이블에서 떨어지면서 깨진 것이다. 오랜만에 바닥에서 깨진 유리를 치우는 일을 했더니 손과 발바닥을 조금씩 찔렸다. 바닥을 치우면서 언제 또 유리에 찔릴지 긴장도 되고 이미 찔린 곳이 따끔하기도 해서 그런지 식은땀이 났다.
예전 같으면 이런 일이 있으면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 됐을 거라는 걸 생각하면서 별생각 없이 치우고 있는 내가 전과는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우울로 인내심이 짧던 시기가 사실 원래의 나와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고 깨진 와중에 차라리 잘된 점을 생각하는 내가 원래의 나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시 산다면 유리로 된 거는 피해야 된다는 걸 배운 셈 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