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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투표

2025.05.29 목

by 온호

오늘부터 우리나라 제21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의 사전투표가 시작되었다. 독재 없이 정상적으로 대통령이 때에 맞춰 계속 새로이 나왔다면 21대 대통령은 아마 한참 전에 나왔을 텐데, 앞 주자가 뒤처진 만큼 후발주자들이 힘내서 스퍼트를 올려준 지금의 이 상황이 참 뭐랄까 정치중립적으로 표현해서 '절묘하다.'


오전에는 혜화에서 마지막으로 청년플랜브릿지 대면 면담을 한 후 잠깐 기지개 센터에 들렀다가 사전투표소로 향했다. 회기동 주민센터 앞에 도착했더니 주차장 밖까지 줄이 나와 있었다. 그 굉장히 긴 줄은 관외투표 줄이었다. 그리고 운 좋게 관내투표 줄은 아예 없었다. 땡볕에서 기다리고 있는 몇몇 사람들로부터 부러운듯한 시선이나 '넌 뭐냐'같은 시선을 받으며 신분 확인하는 곳까지 직행했다. '제 주소지는 여기지요!' 속으로 당당하게 외쳤다.


신분증을 내고 지문을 찍은 다음 투표지를 받아 비어있는 기표소로 들어갔다. 누구를 찍을지는 후보가 확정된 후부터 오늘 아침까지도 생각했었는데, 혜화 가는 지하철 안에서 대선 토론 주요 발언을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보다가 최종 결정을 내렸다. 마케팅 수업이나 조직행동론, 의사결정분석 수업에서 배운 몇 가지 기본적인 심리학 지식을 반영해서 최대한 내가 가진 편향을 인지하려고 노력했고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이성적으로 분석해서 결정을 내렸다. 기표소에 들어가서 지체 없이 투표용지에 도장을 바로 찍었고, 투표 인증용 종이에다가도 한 번 더 도장을 찍은 후 나왔다.


그리고 주민센터를 떠나기 전에는 난생처음으로 투표 인증샷을 찍어 보았다. 고립은둔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인스타툰으로 풀고 계신 청년 분에게서 투표 인증용 종이를 받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년에도 오늘과 똑같은 곳에서 투표를 했었지만 그땐 투표 인증 문화에 대해서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선거에 대한 관심을 올리고 투표 참여를 독려한다는 좋은 뜻을 재밌게 실천하는 방법인 것 같아 이번 기회에 동참해 봤다. 투표 인증샷을 찍고 나니 깨시민이 된 것 같아 뿌듯하면서 기고만장해지는 느낌도 올라왔는데 그런 내 모습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기고만장해지는 느낌은 투표를 마치고 나왔더니 그새 제법 길게 생겨 있는 관내투표줄을 보고 들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표소 안에서는 촬영을 하면 안 된다. 인증샷은 밖에서.


오늘 사전투표율은 20%에 육박하면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이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사전투표율과 전체투표율의 상관관계에 있겠지만(크게 유의미한 관계는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단순히 투표일만 앞당긴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투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의미하길 바라본다. '내 한 표쯤이야' 싶지만 결국 그 한 표를 모은 태산으로 뽑는 것이니까.


사회적 비용 발생이나 정치 불안정성이나 국민 갈등이나 여러모로 앞으로는 불필요하게 자주 대선투표를 치를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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