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윽!'
벌레를 잡을 때 내 속에서 나는 소리.
나는 징그러움을 잘 탄다. 그게 아무리 작은 날파리라도.
오늘 세 시 수업이 휴강이어서 일찍 집에 왔다. 도착하자마자 싱크대부터 치웠다. 시험공부를 시작하기 전 환경 개선 차원의 활동이었다. 어제저녁을 해 먹으면서 나온 후라이팬, 작은 접시, 컵 각 하나씩과 수저가 있었고, 집 떠나는 날 엄마가 기어이 챙겨준 키위를 먹고 나온 껍질도 배수구에서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아침에 학교로 출발할 때는 초파리가 네댓 마리 하얀 장에 붙어 있었고, 그걸 보고 나가면서 집에 돌아오면 이것들부터 처리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초파리를 잡으면서 여름이 시작된다는 실감을 했다. 그리고 한동안 밖에서는 더웠다가, 에어컨을 트는 실내에서는 추웠다가 하는 생활을 하면서 기운이 빠지고 머리가 띵하고 식은땀이 나는 일들을 겪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학교의 스터디 공간이 추워서 얇은 집업 후드를 입고 공부를 했는데.
언제부터 더위와 추위에 모두 취약한 체질이 돼버린 건지.
아침 먹고 땅바닥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는 언덕배기를 넘어서 평지에 도달했을 때 한 유치원생을 봤다. 늘 비슷한 시간에 아빠와 함께 등원을 하는, 거꾸로 해도 똑같은 이름을 가진 까무잡잡한 여자 아이다. 마주치는 경우엔 신기하게도, 앞을 쳐다보고 가는 것이 더 수월해지는 평지 구간에서만 마주치는데 그동안은 늘 아이가 신이 나있어서 나를 보고 지나가는 일이 없었다. 그럴 땐 항상 나 혼자서 속으로 반가워할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이가 차분한 상태로 걷고 있었다. 그러다 마주 오는 나를 발견하고 지나칠 때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내 얼굴이 왜 낯이 익은 지, 나를 어디서 봤었는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게 귀여워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세 시 수업이 휴강하면서 일찍 집으로 돌아오게 된 길 위에서는 재작년에 잠깐 다닌 유도관의 관장님도 마주쳤다. 인사를 드리니 가장 먼저 요즘 허리는 어떠냐며 물어보셨다. 관장님 보는 바로 앞에서 발목 받치기하다가 허리가 삐끗해 그만뒀으니 아마 기억에 남으신 것 같다. 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고 돌아섰다.
그리고 돌아서서 아침에 있었던 일과 방금 겪은 일을 통해 예전 같았으면 가졌을 감상을 떠올렸다. "길 위에서 누군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상호작용을 할 때, 무채색의 세상에서 존재들이 채색이 되어 튀어나오는 이런 현상들을 나는 좋아한다고."
이어서 '지금은 다른 생각이 드네. 무채색이니 유채색이니가 아니다. 내가 어디에서 누군가 아는 사람과 있을 때는 그들이 배경 세상 속에서 튀어나와 잠깐 내게 유채색으로 빛났다가도 무채색의 세상은 반드시 곧장 돌아온다. 나도 그 사람들도 색깔이 아니라 그냥 까만 점이다.'
햇볕이 살짝은 따갑게 느껴지는 여름 오후에 걷다 보면 이상한 생각을 하기 쉬워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