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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팥빙수

by 온호

아마 내가 중학생은 아니고 초등학생이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는 여름마다 아버지가 주축이 되어 함께 팥빙수를 직접 만들어서 먹었다. 6남매에다가 할머니까지 아홉 식구나 되다 보니 그게 확실히 경제적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내가 왜곡해서 기억한 것보다 우리 집은 훨씬 다복하고 화목한 집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20년도 훨씬 더 된 일이다. 그때는 여름에 얼음집에서 큰 얼음 동강을 종종 잘 팔 때였다. 아버지가 그런 얼음집에서 얼음을 사 오시면 집에 있는 엄청나게 무겁고 뾰족뾰족 무시무시한 얼음고정못과 칼날이 있는 팥빙수 기계로 팥빙수를 몇 그릇이나 만들어 먹었다.

가정집이었지만 이렇게 생긴 팥빙수 기계를 썼다.

꽃인지 과일인지 그런 그림들이 있는, 윗부분에는 주름이 있는 투명한 유리 빙수 그릇, 화채 그릇 같은 것에다가 약간은 소름이 돋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갈려 나온 얼음을 받는다. 어린 나는 빙수가 점점 쌓여서 봉긋해지는 것을 볼 때 재밌기도 하고, 좋은 기분이 들곤 했다. 단 거를 좋아하는 집안답게 큰 통조림에서 퍼낸 팥빙수 팥을 하얀 빙수 표면을 제법 많이 가릴 정도로 항그시 올리고 연유도 듬뿍 뿌린다. 그 이후에는 각자 취향에 맞게 딸기 시럽을 넣든 초코 시럽을 넣든 하고 젤리를 넣든 떡을 넣든 둘 다 넣든 마음대로 한다. 우유를 조금 넣거나 외갓집에서 온 콩고물 같은 것이 있으면 뿌려먹기도 하고 그랬다. 난 아마 그것들을 다 좋아했던 것 같은데 초코 시럽만은 잘 넣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다른 재료가 없을 때나 넣었다.


어른이 돼서 설빙도 가고 카페에서 팥빙수도 먹고 했지만 뭔가 늘 아쉬움이 있었다. 그건 어릴 적 온 가족이 주방에서 팥빙수 기계 앞에 모여서 만들어 먹던 특별한 팥빙수에 대한 추억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진짜로 어릴 때 먹던 팥빙수가 더 맛있었기 때문이다. 단맛에 대한 소비자의 평균적인 선호 취향과 마진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팥빙수는 나에겐 팥과 연유의 양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리고 큰 대접에다가 고봉빙수를 만들어서 먹고 다 먹으면 또 갈아서 먹던 만족스러운 양의 팥빙수도 잘 없던 것이었다.


지난주 현충일에 김천 연화지에 있는 카페에서 가족들이랑 팥빙수, 딸기빙수를 먹었다. 엄청 맛있었다. 팥빙수 자체가 맛있었다. 그날 날이 덥기도 해서 더 맛있었다.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정도로 맛있었다면 가족들이 다 모여 있어서 그랬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밖에서 먹던 팥빙수가 늘 아쉬웠던 게 온 가족이 모여서 먹는 게 아니어서 그랬다는 말은 아니다.


어릴 때 팥빙수 만들어먹던 장면을 떠올리니 참. 내가 초등학생일 때도 부모님이 50대 정도였고 그리 젊은 건 아니셨지만 나는 어리고 엄마 아빠는 젊었던 시절이라는 게 참.


서른넷에 대학교 4학년 1학기 다니고 있는 다섯째 아들내미도 예쁘다고 엄마밥 좀 먹이고 싶어가 여름방학에 언제 오냐고 카페에서 묻던 엄마가 생각난다. 좀 귀찮고 싫은 맘도 있지만 날 잡고 한 번 다녀와야겠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하나 알게 된 게, 내가 할머니한테 뭘 한 게 있었던 만큼 돌아가신 후에 후회를 안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팥빙수 사진 보다가 왜 이렇게 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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