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빙 젤라또 파르페
어제 팥빙수 사진을 커버 이미지로 넣고 일기 쓰기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메가커피 팥빙젤라또파르페 이야기를 곁들이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완전 다른 내용을 쓰는 바람에 잊어버렸다. 키오스크에 매번 일시품절이라는 하얀 글씨가 떠있는 팥빙젤라또파르페 이야기를 하면서 바이럴이나 마케팅 같은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 오늘 그 메뉴를 먹게 돼서 생각난 김에 어제 까먹은 얘기를 해야겠다.
2주 전쯤 인터넷에서 '알바생의 눈물'이라는 키워드로 메가커피 팥빙젤라또파르페 바이럴을 처음 접했다.
알바생의 고달픈 애환이 절절하고 실감 나게 느껴지는 웃긴 글이었다. 글이 재미있게 써져 흥미가 가기도 했고, 사진으로 보이는 메뉴의 실함과 내가 원래 팥빙수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저 메뉴가 먹고 싶어졌다. 이게 의도적으로 기획•제작된 바이럴 마케팅이라면 나는 완전히 당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훌륭한 마케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먹으려고 할 때마다 항상 일시품절이었다. 당연하게도 내가 당했다는 건 나만 당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꽤 여러 차례 일시품절 방패에 튕겨 나가고 나니 나름 경영학과라고 배웠던 마케팅 지식들이 생각났다. 마케팅이 어떤 심리를 자극하는지 알기 때문에 '그래, 공연히 메가 커피 손바닥 위에서 파닥거리지 말고 돈 아끼자.' 생각했다. 그렇게 최근 일주일 정도는 메가커피 키오스크를 한 번씩 눌러보고 지나가지 않고 팥빙젤라또파르페 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던 때와 마찬가지로 메가커피 앞을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다이어리 쓰고, 맨몸 운동하고, 중랑천 달리기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역 앞에 있는 메가 커피에 가서 팥빙젤라또파르페를 주문했다. 주말 오전이니 벌써부터 품절이 됐을 것 같지도 않고, 햇살이 좋아서 빙수를 먹으면 너무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아침에 미적거리지 않고 루틴을 잘했으니 보상을 주자는 생각이기도 했다. 구실도 참 다양했다. 실은 참는데 한계가 왔을 뿐이었던 것일 테다.
달리고 와서 굳이 역까지 더 걸어가서 그걸 먹겠다는 게 한심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지치기도 했지만 한 번 먹어보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먹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채로 지낼 것이기 때문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키오스크 앞에 도착해서 검지손가락으로 건성적으로 툭 건드려서 키오스크를 깨웠다. 팥빙젤라또파르페 칸이 어둡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했었는지 거기에 대해 안도하는 마음이 드는 것을 느꼈다.
사 먹지 않으려고 지갑을 방에 두고 나온 것이 무색하게 카카오페이로 쉽게 결제를 했다. 기술의 발전이 이렇게 무섭다. 매장 안에서 순서를 기다렸다가 241번을 부르길래 "감사합니다~."하고 내 팥빙젤라또파르페를 챙겼다. 마케팅을 떠나서 실제로 알바생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메뉴라는 것은 확인이 됐기 때문에 약간의 미안한 마음이랄지, 고생하십니다 같은 마음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인사가 생각보다 크게 나왔다. 그리고 매장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알바생들끼리 "젤라또 몇 개 남았어요?", "젤라또(메뉴) 이거 하나랑 뒤에 세 개 주문 있어요." 같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은 것도 영향이 있었다.
집에 와서 비누로 손을 씻고 땀이 흐르는 얼굴부터 세수를 한 다음 빙수를 먹었다. 맛있었다. 학교 여기저기에서 지나가다 팥빙젤라또파르페를 소재로 한 대화를 종종 듣게 되는 이유가 충분히 납득이 되는 정도였다. 일단 접근성이 좋고, '4,400원으로 먹는 팥빙수로는 이게 최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인지 비슷한 평이 많았다. 맛이야 당연히 카페 가서 먹었던 2만 원짜리 팥빙수가 더 맛있었다. 그리고 작년에 학교 근처 카페에서 조그만 팥빙수 메뉴를 시켜 먹어봤을 때를 떠올려보니 팥빙젤라또파르페가 가성비가 좋다는 게 더 확실해지는 것 같다.
컵에 붙여서 같이 주는 숟가락 말고도 빨대를 하나 챙겨 왔었는데 빨대로 먹으니 연유 맛이 더 잘 느껴져서 맛있었다. 충분히 저어도 먹다 보니 연유가 다시 가라앉는 것 같고 그릇에 먹는 게 아니라 컵으로 먹는 거다 보니 빨대가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빨대도 안 까먹고 잘 챙긴 게 왜 그렇게 뿌듯했는지 모르겠다.
다 먹고 나니 땡볕에 달리느라 뜨거워졌던 몸이 금세 시원해졌다. 에어컨 켜는 거보다 훨씬 시원하고 기분 좋았다. 비워진 플라스틱 컵을 헹궈놓고 샤워를 했다. 샤워를 다 하고선 빨래 마른 것을 개고 아침으로 토스트를 해 먹었다. 메뉴는 엄마가 넣어 준 오렌지, 동생이 신혼여행으로 가서 사 온 아말피산 레몬스프레드와 버터를 바른 식빵, 견과류, 커피였다. 팥빙젤라또파르페처럼 서른네 살, 대학교 4학년 원룸 자취생의 주말 아침으로는 꽤나 호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