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강
오늘 기말시험 세 개를 치는 것을 마지막으로 또 한 번 하나의 학기가 끝이 났다.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나온 강의실 복도에서는 소리라도 시원하게 지르고 싶은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 학기는 이사하면서 환경의 변화도 있었고, 그와 관련해서 정신적으로 부침도 겪었는데 마무리만큼은 아주 차분하고 개운하게 잘 이루어졌다. 이번 한 주만큼 마음이 흔들림 없이 단단한 상태였던 적이 언제였는가 싶을 정도였다. 내 상태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었고, 원하는 바를 요구할 수 있었고, 불필요한 불안에 휘둘리지 않았고, 감사를 느끼고 그 감사를 똑바로 전달할 수 있었다. '내'가 또렷하게 있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제법 있었다.
기말시험은 상당히 만족스럽게 치렀다. 학기 내내 몇 과목 빼고는 대체로 당일 복습이나 익일 복습을 꾸준히 한 편이어서 시험 기간에 부담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막판에 마지막으로 대량의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는 단계에서도 견과류나 빵을 마구 주워 먹는다거나 하는 증세가 없었다. 극도로 하기 싫으면 그냥 누워서 죄책감 없이 마음 편하게 유튜브를 봤다. 그 덕인지 시험 주간에는 매일 빠지지 않고 아침 맨몸운동을 하며 '그냥 하는' 하루의 시작 흐름을 만들 수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밤에는 일찍 잠을 자는 선순환이 오랜만에 다시 찾아왔다.
오늘 두 번째 시험을 끝내고 나와서 세 번째 시험이 있는 강의실로 이동하던 복도에서는 시험이 끝나 가서 아쉽다는 생각이 불쑥 드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아쉬워하고 있지?' 오랜만에 예전 같은 흐름을 만들어준 나의 메기, 기말시험과의 이별이 아쉬웠던 것이다. 시험이 없더라도 그런 적당한 긴장감을 가질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시험 대비를 하다가 속이 울렁거리고 현기증이 나는 것만 같고, 이쪽 다리를 꼬았다가 저쪽 다리를 꼬았다가 정신없이 앉은 자세를 계속 바꾸면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학점이 이후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서,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걸 분명히 아는 상태로 성적을 받고 싶지 않았다. 직전 학기에 그런 느낌을 받아 봤더니 퍽 찝찝했던 것이다.
시험지를 내던 여섯 번 동안 교수님들께 "감사합니다."만 말하면서 정갈한 자세로 허리를 숙였다. 잠깐 다녔던 유도관이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놀랍다. 그리고 "감사합니다."에는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배운 것들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진심 어린 감사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인사에서는 교수님들께서 내 인사를 알아들으셨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이 참 좋았다.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