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1
첫째 날
월요일 아침 5시에 눈이 떠졌을 때 헛짓하지 않고 하루치 스픽을 미리 했다. 그리고 코레일 앱을 켜서 새로 생긴 취소표들 중 9시 출발하는 것으로 기차표를 예매했다.
저번에 기차 탔을 때는 시간에 너무 딱 맞춰 도착하는 바람에 불쾌했기 때문에 이번엔 여유 있게 집을 나섰다. 그래서 남는 시간에 서울역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출발 대기 중인 기차로 들어갔다. 기차 계단을 올라가서 차량 안으로 들어갈 때 내 앞의 남자가 문의 1분 열림 버튼을 누르고 들어갔는데, 그런 버튼이 있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밑에서 위로 누르도록 되어 있는 게 인상 깊었다.
1시간 반 정도 이동을 마치고 역에 도착하니 일이 있어 못 온다던 아버지가 태우러 와 계셨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어디에 살구 선물을 주러 간다고 하셨는데 나에게 같이 갈지, 아니면 집에 먼저 내릴지 물어보셨다. 내가 집에 먼저 간다고 따로 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10분 차이 난다고 해도 아버지 두 번 왔다 갔다 하게 할 것도 아니고 어쨌든 가족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내려온 것이니까 같이 가겠다고 했다.
따라간 곳은 어느 작가의 공방이었다. 작가 분은 시골 산 밑의 오래된 한옥 낡은 집과 창고 같은 곳에서 20년째 옛날 방식으로 도자기를 빚고 또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셨다. 아버지가 사 왔다는 도자기 컵이나 그릇 몇 개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아버지는 나를 "우리 둘째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악수를 하고 공방 주인이 내어준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앉았다. 굉장히 오래된 나무 선반들이 있고, 회색 시멘트 벽과 바닥으로 된 작업실 공간에서 남자 셋이서 도자기 컵에 믹스커피를 한 잔씩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버지와 작가 분은 근황이나 건강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그 걸 옆에서 듣고 있으니 초등학교 2학년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전통 연 만드는 분의 작업실이었다. 무거운 나무 얼레, 한지로 된 연들이 많이 있는 방이었다. 거기서 나는 어른들이 얘기하는 동안 두 시간을 바닥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긴팔 리넨 셔츠를 입고서 의자 위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내 모습이 반투명해지는 듯하면서 상고머리를 한 작은 몸의 아이의 형상으로 응축되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아홉 살 때나, 서른 중반 일 때나 아버지는 한결같이 전통과 전통 방식을 잇는 사람들을 좋아하는구나 싶어 아빠가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이 또렷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나선 아버지가 작가 분께서 공방 대청소한다고 내놓은 버리는 도자기 그릇들을 몇 개 선별해서 건지고 있는 동안 나는 작가 분과 대화를 나눴다. 60회가 넘는 개인전을 하는 것은 상당히 대단한 일이라는 이야기, 자랑스러운 자녀들과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 힘들 때 전화하라는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에 집중하는 한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미덕을 발휘하고 있는 내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일방적인 대화를 나눌 때보다는, 그림을 보면서 내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그것들에 대해 작가에게 직접 작품 해설을 들을 때가 훨씬 즐거웠다.
작가 분에게 칭찬과, 컵, 그릇을 선물로 받고 작업실을 나와 방문 요양 일을 마친 어머니를 태우러 갔다. 합류한 어머니는 나를 만나서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그리고 밥을 먹고 들어가자 했다. 그래서 한 두해 전에 알게 된 집 근처 줄 서는 짬뽕 집에 가게 됐다. 영업시간이 네 시간밖에 되지 않고 줄 서는 것이 꺼려져 가족들이 모두 모였을 때는 가기가 힘들었던 곳이다. 어머니는 "40년 가까이 산 지역의 맛집을 네 덕에 가본다"며 계속 나를 환영해 주셨다. 식사를 만족스럽게 마치고 집에 들어가서 나는 피곤했는지 침대에서 낮잠을 세 시간이나 잤다.
어머니가 준비를 많이 할 게 뻔해서 집에 간다는 걸 미리 알리지 않고 아침에 알렸기 때문에 저녁 식사는 집에 있던 재료만으로 해서 먹었고, 대신 아버지가 만든 와인 5종을 전부 조금씩 마셨다. 식사를 마치고는 다른 남매들이 두고 간 간식들이 자식들이나 손자 오면 먹으라고 그대로 남아있어서 아버지랑 좀 나눠 먹었다.
식탁을 정리할 때부터 설거지할 때까지, 내가 하면 되는데 자꾸 놔두라며 말리는 어머니의 말들이 듣기 좋지는 않다는 걸 느끼면서 부엌 뒷정리를 했다. 일흔을 넘긴 여자의 육신을 쓰는 것과 젊은 남자의 육신을 쓰는 것 중 어떻게 생각해도 내가 하는 게 합당한데, 엄마는 참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아들이 왔는데 이렇게 해놓을 걸, 저렇게 해놓을 걸 하면서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좋은 말은 하지 않는 어머니를 보며 불만스러웠다. 그래도 "~말라니깐" 화법을 쓰지 않고 "괜찮아요" 말투를 유지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자잘한 집안인들을 하려고 했다.
식사 후에는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듯 저녁 일찍 자러 방으로 들어갔고, 어머니는 소파에서 TV 보다가 애벌 잠을 잤다. 자정쯤 됐을 때에 낮잠을 자서 늦게 자는 나와, 자다 다시 나온 아버지가 TV만 밝게 번뜩거리는 어두운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소파에 앉은 채로 고개를 떨구고 자고 있는 어머니를 깨워서 침대 가서 자라고 한 후 각자 화장실에 갔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재입학 전 같이 살던 때의 생활 모습 그대로 익숙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