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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방학 2

by 온호

둘째 날

아침에 셋이서 빵과 과일, 커피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어머니는 일을 갔다. 내가 시원할 때 동네에서 자전거나 좀 탈까 하고 있으니 아버지가 본인 타는 코스 같이 갈래 해서 그러자 했다. 전에는 내가 뭘 하려고 할 때 아버지가 같이 하자하면 기다려야 되는 게 그렇게 싫고 같이 하기도 싫어서 혼자 했는데 참 인정머리도 없었다. 정서가 불안정할 때는 인내심이나 다른 여러 미덕들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어지는가 보다.


엘리베이터에 자전거 두 개를 모로 집어넣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익숙한 내 산책 코스를 지나, 처음 가보는 내를 따라 읍 둘레를 돌다시피 자전거를 탔다. 아버지가 다니는 코스라길래 한 시간 안쪽일 줄 알았는데 거의 두 시간 가까이 탔다. 그렇게 앞에서 에스코트하는 아버지의 자전거를 따라 시골길을 구경했다. 아버지가 연신 냇가에서 "여기 꽃이 다 졌네."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 평소 보던 예쁜 풍경을 나한테도 보여주고 싶으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국 어느 휴게소를 가든 꼭 아는 사람을 한 명쯤은 만난다는 명성이 있는 아버지답게 시골에 밭일하는 어른들을 한 번씩 마주칠 때마다 아버지는 인사를 했다. 그분들에게 아버지는 "우리 둘째 아들"하고 나를 소개했고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안녕하세요"했다.


높은 언덕을 넘을 때는 바퀴가 작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버지가 훨씬 힘들겠다는 걸 생각했다. 그러면서 보통 남자들 같은 경우에는 거기서 유치하게 "내가 더 불리하다, 힘들다"라는 식으로 생색을 내겠지만 설마 아버지는 안 그러겠지 하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러지 않으셨다.


무사히 집에 도착해서 공동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을 때 아버지가 "오르막길 갈 때는 미니벨로가 더 힘든 거 알제." 하셨는데 결국 그거를 못 참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말로는 "예", 하고 앞에서 몰래 미소만 지으며 웃음을 참았다.


1/3 토막이 나버린 인원수지만 가족이 점심, 저녁 식사까지 다 같이 했다. 밤에는 어머니가 발이 피곤한 것 같길래 지압을 조금 해드리고 대야에 얼음물을 받아서 드렸다. 발이 차가운 바람에 어머니는 소파에서 잠드는 타이밍을 그냥 넘겨 버렸는데 그렇다고 제때 방에 가서 주무시진 않으셨다. 그래서 들어가서 주무시라는 말을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도 내 방으로 돌아가서 하루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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