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요즘 내 일상에 가장 흥미로웠던 요소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인 것 같다.
어머니와 아버지 둘부터 시작해서 우리 집 6남매는 다 감각 쪽의 인간인 편이다. 나는 타고난 기질과 더불어 그런 환경에서 쭉 자랐다 보니 고등학교 입학하고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서야 처음으로 이성 쪽 인간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게 내 인생에 큰 전환을 가져왔었다는 것이야 좀 더 나중에 돌아봤을 때 했던 생각이고, 그때 당시에 나는 상당히 당혹스러워했었다. 충격적이었다. 새로 사귄 친구들의 삶을 인식하는 방법 하며, 살아가는 방식이나 관점이 나에게 완전히 새 지평을 열어줬고 내 방식이 뭔가 잘못된 것 같이 느껴지도록 만들기도 했다. 그 충격으로 아직도 기숙사 4인실 베이지색 방바닥에 둘러앉아서 친구들과 대화하던 순간들을 잊지 못한다.
룸메이트들 뿐 아니라 기숙사생 동기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다 같이 이 방 저 방 다니며 자연스레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를 놀라게 하는 아주 똑똑하고 뛰어난 생각들을 말로 전해 들으면서 감탄함과 동시에, 느끼지 못하는 녀석들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이 녀석들은 느낄 수 있게 만들어지지 않았구나.
당연하게도 언제나 내 겉면 여기저기를 찌르면서 설명 없이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거나 감동시키는 어떤 것들에 대해 이 녀석들은 애초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완전히 무감각하고, 남은 평생에도 그걸 절대로 알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 것도 인생인데, 이 거 되게 좋은데, 이 거 없이 인생의 반쪽을 버리고 평생 저렇게 살아야 된다고?'
하지만 나는 그 녀석들은 그렇기 때문에만 가질 수 있는 힘이 있어 멋있어 보였고 그게 부러웠다. 나도 그걸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요 며칠『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기 전까지 그런 생각을 계속 유지하며 살아왔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을 조금 내려놓게 되었다. 두 번째 전환의 순간을 맞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숙사 때의 충격과 비슷한 이야기이다.
스물네 살 때쯤이었을 텐데, 전역 후 대학 생활을 한 학기 더 하고 고향 친구 두 명을 만났을 때였다. 장소는 친구 한 명이 자주 간다는 술집이었고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곱창이었는지 막창이었는지를 먹었었다. 그때 내가 진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고 했던 이야기가 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런 말은 그전에도 했던 적이 없었고 그 이후에도 다시 한 적이 없었다. 꽤 중요한 이야기였다.
팀플 같은 것을 할 때 적극성을 띄고 자기한테 유리하도록 대화를 조정하면서 다른 조원들에게 어느 정도의 손해를 끼치는 것을 꺼리지 않는 부류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런 부류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으로 큰 성과와 주목을 챙겨간다는 것, 그리고 소위 '성공'이라는 게 그런 정신적인 덕목이 있어야 가능한 것 같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부류라는 걸 이미 알 것 같아서 속상하다고 이야기했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나는 내가 손해를 보는 게 좋다. 결국은 그런 것 같다. 내 머리는 그게 손해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에는 그게 이득이어서 마음 편하자고 그렇게 사는 것 같다. 결국 이성적인 사고가 강한 사람은 나는 될 수 없는 것이다.
편도체니 내측두엽이니 전두엽이니 외측두엽이니 쌍곡형할인이니 지수형 할인이니 배웠지만 소용이 크게 없다. 결국 생긴 대로 사는 것 같다. 그래도 바짓가랑이 붙잡듯 내가 못 가진 쪽도 처절하게 붙잡고 균형 있게 살고 싶은 것이 욕심이다.
아그네스한테 외면당한 충격의 여파로 물에 빠져 다치고 결국 그 부상 때문에 죽게 된 골드문트의 마지막이 어쩐지 찝찝하긴 하지만 나도 수도원에서 평생을 사는 삶보단 방랑을 하며 사는 삶을 택할 것 같다.
하지만 나르치스, 당신에게는 어머니가 없는데 어떻게 죽을 셈이죠?
어머니 없이는 사랑할 수 없어.
어머니 없이는 죽을 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