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어제 내 생기부를 봤다.
이번에 신청하고 있는 장학과 관련해서 고등학교 생활 기록부가 필요했다. 생기부를 요구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점심시간에 근무지 바로 앞에 있는 24시간 무인 프린트카페에서 10페이지짜리 생기부를 출력했다. 정부24에서 아주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내가 어떤 학생이었는지에 대한 담임선생님들의 기록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 다음으로는, 내 독서 활동 부분을 보다가 상당히 놀라는 순간이 찾아왔다.
먼저, 대학생이 되고 읽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플라톤의 『국가』나,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고등학교 때 독서 활동하다가 읽은 책이었다는 것과, 지금 읽어보려고 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이미 읽어봤다는 것,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도 이미 읽었었다는 것에서 조금 놀랐다.
많이 놀란 지점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신』을 읽고 남긴 독후감의 요약, 『데미안』을 읽고 남긴 독후감 요약의 내용이 지금 내가 새롭게 알게 됐다고 생각하는 생각과 똑같다는 것이었다.
고등학생의 내가『데미안』을 읽고는 "인생의 모순은 운명의 개척 및 자아추구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회복할 때 해결된다는 것에 공감함.", 『신』을 읽고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협동 같은 정신임을 알았고 한 번뿐인 인생에 공포 때문에 머뭇거릴 필요가 없음을 느꼈다.", 하시모토 츠무구의 『빛을 구하라』를 읽고는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가 때로는 좌절할 수도 있지만 일상 속의 행복을 통해 충분히 극복 가능함을 배웠고, 도전하고 참고 견디는 자세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남겨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했던 나는 10년 동안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있었다가 이제야 다시 돌아온 걸까? 좌우명 짓기 숙제에서 "현재에 충실하라."라는 답을 도출해 냈던 아홉 살의 나를 발견했을 때와 같이 또 한 번, 약간은 씁쓸하기도 한 충격에 잠시 멍해졌다. 어린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시간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나를 덮친 것이다.
마흔의 나, 쉰의 나 등이 앞으로 다시 이런 충격을 받지 않아도 되도록 나는 지금의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잘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