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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서울시 기술교육원

by 온호

9월 1일부터 서울시 기술교육원 북부캠퍼스로 등교하게 되었다. 막학기 개강과 더불어 캠퍼스 두 곳을 동시에 다니게 된 것이다. 낮에는 학교 가서 강의 듣고, 저녁에는 기술교육원에 가서 도배와 건축 목공을 배우고.


지난 화요일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세 가지 질문을 받았다. 혹시 모르니 그 내용을 적지는 않겠지만, 대답을 잘했다. 우선 선발 대상이라 형식적으로 하는 면접이라고 생각하니 긴장되지 않은 덕도 있었고, 꾸밀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도 그 내용이 충실해서 자신감이 있었다.


아버지 은퇴를 계기로 아홉 명 대가족이 살았던 사택에서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던 것이 4년 전이다. 그때 우리 집과 이모집 도배장판을 새로 하면서 돈이 상당히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결과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했던 생각이 '내가 할까?'였다.


하지만 당시에 꿈틀거리는 뭔가를 느꼈음에도, 오랜 세월의 은둔으로 인한 두려움과 주저함의 관성이 더 커서 나는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후 재입학을 하고 지금까지 온 것이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이런저런 처음 하는 시도를 해보면서, 인생을 사는 용기라든지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힘이라든지가 제법 길러진 것 같다. 그 덕에 기술교육원 신청도 할 수 있었다.


그냥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다. 배워보고 싶으니까 배우러 가는 거고. 블루칼라에 대한 세상과 가족들의 견해는 일부 타당하기도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것보다 내 환경이나 생활을 나 스스로 꾸리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런 동기의 근원은 인생의 콘텐츠를 다양하게 경험하고 싶은 호기심인 것 같다. 사실 이번 기술교육원 입학을 계기로 다른 관련 분야로도 내 지식과 기술이 확장되길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가난한 주제에 열심히 몸을 써서 일하지 않고 고고한 목회자 내외로 살았던 부모님'에 대한 어릴 적 원망도 영향이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그냥 내가 사무실 출퇴근하는 화이트칼라보다 노동자가 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고. 어릴 때 했던 전단지 돌리기나 TV포장 알바의 경험이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름 준수한 학벌 때문에 군대에서도 행정병으로 차출이 됐지만, 행정 업무보다 전완근이 터지도록 군수품을 수령, 불출할 때가 좋았다. 가끔 엄청 살벌한 학벌도 아닌 나를 보고도 먹물 먹은 샌님 취급하는 사람들을 견디는 것이 못 배워 무식한 사람 취급받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몸 써서 하는 일을 배워보려고 한다.


그럴 마음가짐은 아니지만 해보다 아니면 말아도 그만이다. 반년간 생활이 꽤 역동적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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