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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대비

by 온호

대비 對比.

"맞대서 견주는 것"이다.


1시간 전 나는, '되게 대비되네.'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퍼가 열린 가방을 안은 채로 한 손에는 우산까지 쓰고 자전거를 몰아 비를 뚫고 등교했던 어제의 고생길이 오늘 하굣길엔 소풍길 같았기 때문이다. 포춘 쿠키 모양 달이 정면에서 누렇게 빛나고 있었고, 시원해지기만을 기다렸던 사람들이 모두 한 번에 쏟아져 나온 것마냥 수변공원 길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물 위에 비친 도시의 조명들, 시원한 바람,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의 에너지 등 많은 것이 내 기분을 좋아지게 만들었다.


오늘에 맞대어진 바로 어제에 같은 장소에서 험악한 일을 당했었기 때문에, 똑같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오늘의 귀갓길이 더 극명하게 대비됐던 것 같다. 신기한 일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그 길에서 행복감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대비"라는 말을 생각하자, 지금 내가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도 방에서 10년 지냈던 만큼에 대비되어 더 찬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일일 수 있다. 내 실수는 떳떳한 것도 아니고 페널티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그렇다.


지금 내가 세상 속에 나와서 몸에 처묻히고 다니는 것들이 개똥일지도 모른다. 근데 관짝 속의 염을 해놓은 시체처럼 깨끗하고 안전하게 있는다고 해서 그게 더 낫냐고 하면 누구라도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나는 오랫동안 방 안에만 있으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개똥 밭에서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르는 걸 동경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 나는 상상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런 내 바람 속에서 살고 있다. 때로는 즐겁기도 하고 더 많은 때로는 주로 힘들면서 사는 것. 힘듦의 이름표 뒷면에 삶이라고 적힌 걸 생각하면 '살고 있구나'하는 읊조림이 찾아온다. 더군다나 지금 내 상황이 아주 힘들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주 좋은 편이다.


친구

8월 31일에는 유치원 A와 고기를 먹었었다. 애피타이저로 밀면을 한 그릇씩 먹고 동네에 새로 생긴 고깃집을 갔다. A가 에스코트해 주는 대로 따라다녔다. 덕분에 지름길로 동네를 휘젓고 다니면서 탐험을 많이 했다. 늘 다니던 곳으로만 다니니 보지 못했던 동네 곳곳의 새로운 풍경을 재밌게 구경할 수 있었다. 특히 철길 건널목을 건너는 건 정말 재밌었다. TV나 애니메이션에서나 보던 것이 집 바로 옆에 있었다니.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아서 신이 났다. 건널목 옆에는 육교도 하나 있어서 고기를 먹고 돌아올 때는 육교로도 건너와 봤다.


그리고 이 날 처음으로 유치원 A에게 밥을 샀다. 그래도 형으로서 동생 밥 한 번 사주고 싶다는 느낌이 든 적이 몇 번 있는데 선뜻 그러지 못하다가 욕구에 충실해서 계산을 했다. 미리 그런 뜻을 전했더니 A는 "잘 먹겠습니다."하고 깔끔한 반응을 보였다. '받음으로써 준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하고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A는 나보다 한참 나이가 적지만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친구라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웃음

기술교육원에 이틀째 가보고 받은 인상인데, 우리 과 분들은 참 잘 웃으신다. 이런 포인트에도 웃을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웃음이 많으시다. 대학교 강의실에서 보통 많이 느끼는 숨 막히도록 조심스럽고 소극적인 분위기에 2년 동안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 것인지, 이런 분위기가 더 낯설게 느껴졌다. 낯설다 뿐이지 나까지 덩달아 더 잘 웃게 되는 것 같아서 좋다.


오늘 기술교육원 수업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다 왔을 때쯤, 다리 위에서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교실에서 언뜻 들었던 이야기의 내용, 교수님과의 친밀한 관계, 짧은 머리카락 등 여러 가지 특징 정보가 합쳐지면서 같은 반 사람이라는 걸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그분은 나를 모르시는 것 같아 과 이름을 대며 티를 냈다.


통성명도 하지 않고 교육에 대한 그분의 이전 경험을 듣기 시작했다. 그분은 또, 왕복으로 자전거 통학을 하실 거라고 했다. 나도 등교 때든 귀가 때든 운동삼아 편도는 자전거로 이동할 계획이니 몇 개월 동안은 종종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자전거를 끌고 집 방향으로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따님이 유치원 A와 동갑이라는 것과 졸업하고 어느 반도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까지 들었을 때 집 앞에 도착했다. "내일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서 나는 따릉이를 반납했다.


그런 것은 내가 기대하던 '히키코모리 탈출 이후의 삶'의 장면 중 하나였다. 다행히 잘 돼 가고 있는 것 같다.


익숙한 길과, 앞으로 익숙해질 새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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