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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히키코모리

by 온호

우연한 계기로 오늘 오랜만에 자조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했던 생각들에 대해서 내 주특기인 뒤죽박죽 글쓰기로 남겨 보려고 한다.


올해는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에 참여하면서 청년들에 대해 꽤 많은 실망을 했다. 첫 번째는 내 비합리적인 신념에서 출발한 실망이었다. 내 비합리적인 신념 중 하나는 '청년들은 약속 시간에 늦으면 안 돼, 청년들은 프로그램 시작 시간에 맞춰 도착해야 돼.'이다.


극단적으로 몇 년 만에 외출인 경우, '길 찾아오기' 혹은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이용 방법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고, 자전거 공유 서비스 이용 방법을 모를 수도 있다. 집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햇빛을 보고 사람들을 보고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면허가 없거나 차가 없거나 택시비가 없을 수도 있다. 또, 단순히 앞에 다른 일정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외부적인 요인으로는 이동 중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이 에러를 일으켜 연착을 심하게 하는 경우도 생길 수도 있고, 폭우로 이동 자체에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강도를 만났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왔을 수도 있다. 이 밖에도 굉장히 많은 변수가 있을 것이다.


사실은 사람이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제때에 맞춰서 어떤 장소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부적 요인으로 인한 것인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것인지는 반복적으로 관찰해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내가 '청년들은 약속 시간에 늦으면 안 돼, 청년들은 프로그램 시작 시간에 맞춰 도착해야 돼. 지각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야'하고 생각하는 건 비합리적인 신념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아니면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으면서도) 청년들과 모여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할 때 단 한 번도 제 때 시작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큰 짜증, 혐오감까지도 느낀다는 것이다. 왜냐면 몇몇은 반복적으로 지각을 하기도 하고, 그저 그들로 인해 누군가는 어색한 기다림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실망은 청년들의 '시켜도 안 하는 모습'을 너무 자주 보게 되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것도 머리로는 이해를 하고 있다. 강력한 부정적 감정에 짓눌려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이거나, 마음의 준비가 덜 됐거나, 방법을 잘 모르거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거나.


문제는, 내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아니면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으면서도) 청년들이 의지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속으로는 그들을 비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매사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 더 나아가서는 공격적이기까지 한 태도로 불성실한 자세를 보이면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큰 짜증, 혐오감까지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내 안에서는 고립은둔 청년들에 대한 좋지 않은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어쩌면 여기 오는 사람들 중 일부는 그저 게으르거나, 비겁하거나, 책임감이 없거나, 이기적인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괴롭다. 결국 그 모든 비난하는 판단들이 실은 내 모습을 향한 것이고, 그 비난하는 판단들이 고립은둔 청년들을 괴롭게 만들 뿐인 사람들의 편견과 똑같은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저런 의견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고위험군이나 부적격자들이 일정 비율로 언더라이팅을 뚫고 들어와 보험 혜택을 누리듯, 복지 서비스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일정 비율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실업급여나 기초수급 시스템을 이용해 안주한다거나. 하지만 저런 의견은 모든 것을 설명하는 정답이 결코 아닐뿐더러 고립은둔 청년들을 스스로 방 안에 더욱 가두게 만들 뿐이다.


"히키코모리", "고립은둔 청년", "니트족", "쉬었음 청년" 등 뭐라고 부르든 간에, 그들에게 정답을 제시해 줌으로써 일깨우고, 돕는다고 착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자신은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그 무언가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답답함을 간편하게 해소하고 있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렵다. 말하기는 쉽고 듣기는 어렵다. 오늘도 나는 다른 청년분들이 말을 할 때 청취 소진을 수없이 느끼기도 했고, 아는 척 한마디 덧붙이기를 참지 못했다.


그래서 히키코모리의 가족이든, 친구든, 친척이든, 지나가던 사람이든 히키코모리를 말로 설득하고 도우려 하기보다는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우리는 말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훨씬 더 어렵더라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때까지 행동해야 한다. 히키코모리를 이해하기 위해 자료들을 찾아보는 공부일 수도, 공감하기 위한 사랑일 수도, 기다림이라는 행동하지 않음일 수도 있다.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청년들의 사정도 다양하기 때문에 이렇게 함부로 내 짧은 생각을 드러내기가 많이 조심스럽다.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내 생각을 솔직히 밝히는 내 일기장이라는 구실을 방패 삼아 해본다.


고립은둔 지원 사업에서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청년들을 볼 때 지긋지긋함을 느꼈다. 그리고 예전과는 달리 그런 사람들과 차갑게 거리를 두는 선택을 하는 나를 보며 '내 연민이 말랐다'고 생각했다. 오늘 자조모임에서 변한 내 마음과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놨을 때, 본인이 읽은 책 내용을 말해준 청년이 있다. "마음이 안정된 사람은 타인과 거리를 둘 줄 알게 된다."였나. 그 말이 위로가 됐고 이 글을 쓰는 용기가 됐다. 그 분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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