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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비폭력대화

by 온호

비폭력대화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 지금으로부터 최소 반년 이상된 때였던 것 같다.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 권역 복지관에서 비폭력대화 수업을 들었다. 판단, 분석, 평가하지 않고 관찰한 것만을 가지고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표현하는 대화 방식이 굉장히 혁명적으로 다가왔다. 연습을 조금 해봤지만 쉽지 않았고 연습을 충분히 해서 정말로 우리가 그렇게 대화할 수 있다면 서로를 상처 입힐 일도, 갈등을 겪을 일도 분명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관련 책을 읽어봐야겠다 생각했지만 실제로 도서관에서 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를 빌린 것은 2주 정도 전의 일이다.


비폭력대화(NVC)의 네 가지 요소는 관찰, 느낌, 욕구, 부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찰은 대상에 대한 평가를 빼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철수 책상은 더럽다"가 아니라 "철수 책상에는 커피 마신 컵들이 있고 과자 포장지가 있고 마른 물티슈가 있고" 같은 느낌으로. 이런 식으로 느낌과 욕구, 부탁 요소에도 각각 지켜야 할 조건이 있다. 느낌이 아닌데 느낌으로 착각하거나 욕구가 아닌데 욕구로 착각하거나, 부탁이 아닌데 부탁이라고 착각하고 잘못 말하는 사례가 책에 많이 등장한다.


예를 하나 만들어 봐야겠다.


"철수야 네 책상이 더러워서 너무 보기가 싫다, 좀 치워라."를


철수야 네가 책상 위에 커피 마신 컵들과 과자 쓰레기, 부스러기, 다 쓴 휴지를 치우지 않고 두는 것을 볼 때 (관찰)

나는 속상하고 실망스러워 (느낌)

왜냐하면 나는 내가 청소해 준 방이 깨끗하게 유지되길 원하고, 아들이 나를 배려한다고 느끼고 싶기 때문이야(욕구)

책상 위에 쓰레기나 식기를 하루를 넘기기 전에 치워주겠니? (부탁)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이런 식이다.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걱정돼서 그래",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할 수도 있어" 등등 자기의 진짜 욕구를 드러내지 않고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말하는 식의 화법은 듣는 사람에게 상당히 불쾌감을 준다. 그런 사람들은 더욱더 NVC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일부러 숨기려는 것이 아니어도, 우리 사회가 구성원이 욕구와 느낌을 말하도록 훈련시키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를 분명하게 표현하기란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지난 글(#히키코모리)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내 욕구가 뭐였는지 생각해 보고 NVC로 재시도해보려고 한다.

청년들이 프로그램 시작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을 때 나는 걱정된다, 짜증 난다, 속상하다. 왜냐면 나는 강사분들이나 복지사분들이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 돕는 일을 하면서 그 사람들로 인해 불편하거나, 상처받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늦게 될 때는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도착 예정 시간을 미리 알려주면 좋겠다.

왜 사적인 모임보다 유독 프로그램 지각에 대해서 불쾌한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런 욕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으쌰으쌰 하려는 사람들이 실망하고 좌절해서 줄어드는 게 싫어서 그런가 보다.

잘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는 공감이라는 주제에 대한 관심이 좀 있는 모양이다. 하나도 이해가 안 됐지만 막스 셸러의『공감의 본질과 형식』같은 책도 읽어보고 학교 교양 강의도 자연스레 연관 있는 것들을 듣고 있는 걸 보면. 애를 많이 쓰고 연습을 해서 상대를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곳에 그대로 있어라", "존재 전체로 들어라" 이미 도움 되는 좋은 말들도 많이 있다.


철길 건널목

요즘 새로운 동선에 꽂혀서 매일 그리로 다닌다. 타이밍이 안 좋아 열차를 보내야 할 때는 몇 분이나 기다려야 해서 지름길이라는 이름은 벗겨냈다. 어제는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는데 새소리가 크게 들렸다. 알고 보니 바로 뒤 나무에 새집이 있었다. 아침 등굣길이 이렇게 낭만적이니 꽤나 다닐만한 것 같기도 하다.


생활패턴

기술교육원 마치고 자전거 타고 집에 돌아오면 바로 샤워부터 갈긴다. 조금 미적거리다가 할 거 하고 자려고 하면 자정이 넘어버리기 때문에 들어오자마자 샤워를 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나는 기질적으로 잠을 늦게까지 못 자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자려면 일찍 자는 수밖에 없다.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약간 무섭다. 특정 행동을 하면 전기 충격을 당하는 실험 속 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매트리스에서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폭력대화법으로 내 욕구와 느낌을 잘 알아준 다음에, 다이어리에다가 "겁먹지 않고 하다 보면 지나간다"는 확언을 쓴다. 씻기 전에는 거울을 보고 "사랑해"하고 말하기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왠지 애교도 느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어제는 처음으로 세탁기 예약 기능을 써봤다. 대충 귀가하는 시간쯤에 맞춰서 빨래가 끝나도록 설정하고 집을 나섰다. 생활이 바뀌고, 다른 상황에 놓이니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환경에 스스로를 던지는 일도 제법 재밌는 것 같다. 새로운 걸 많이 배우는데 좋은 것 같다.


도서관에서는 처음으로 학교 밖으로 나가는 일을 해봤다. 이것저것 새로운 일들이 심심치 않게 해 주니 생활에 어느 정도 활력이 깃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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