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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자란다

#화분

by 온호

화분이 잘 자라고 있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처음 떠올린 게 몇 주 전인지 기억도 안 날 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화분은 여전히 잘 자라고 있다. 아, 물론 엄밀히 말하면 화분은 자라지 않는다. 화분에 심긴 오렌지 레몬 나무가 그렇다는 거다.


두 나무 중 키가 작은 녀석은 요즘 새 잎이 11장이나 났다. 그래서 총 38장이 되었다. 화분의 나무 이파리 수를 세는 취미는 없고 화분의 규모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처음으로 세어 봤다. 아무튼 진한 초록색 이파리들 사이에 밝은 연두색 이파리가 점점 커지는 걸 매일 지켜보면 기분이 여간 좋은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다.


오늘 아침에는 학교 가기 전에 화분에 물을 줬다. 가급적이면 금요일을 물 주는 날로 고정해놓고 있다. 액체 비료를 물에 조금 타서 줬는데, 이렇게 한 것도 이번으로 세 번째다. 조그만 화분에 담긴 소량의 흙이 보금자리의 전부인 나무가 딱하기도 하고 잘 자랐으면 하는 욕심이기도 하고 그렇다.


학교 가기 전에 나는 조그만 원탁 위에 놓인 화분의 나무 이파리를 쓰다듬으며 소소한 여유와 안정을 취하고 출발하곤 한다. 그리고 15분쯤 걸어서 캠퍼스에 도착하면 이제 큰 나무들을 구경한다. 며칠 지났을 뿐인데도 도서관 내려가는 길의 단풍나무들의 색이 조금 변했다는 게 느껴질 때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어떤 색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은 어떤 한순간뿐이라는 생각.

어릴 때는 나뭇잎이 갈색이 되면 뭔가 쓸쓸했는데 이제는 아름답게 보인다는 생각.

학생으로서 이 색깔의 캠퍼스를 걷는 건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


이렇게 가을을 타고 넘실넘실 겨울로 건너 가다 보면 나는 '대학교 졸업'이라는 걸 하게 될 것이다. 무려 16년 만의 졸업. 학교 3개를 졸업하는데 12년이 걸렸는데 마지막 학교 하나를 졸업하는데 16년이 걸린 것도 재미가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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