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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Feb 06. 2024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To do 리스트 하나씩 지우기

오늘 점심에는 교수님을 다시 찾아갔다. 1월에 한번 더 오라고 하셨었는데 1월엔 유치원 근로를 하느라 점심시간이 짧아서 그럴 수 없었다. 그냥 불쑥 와도 된다고 하셨지만 그러기엔 그래도 내 마음이 편치 않아 미리 말씀드리고자 11시쯤에 연구실로 찾아갔다. 교수님은 안 계셨고 조교분만 있었는데, 그래서 조교분에게 "교수님께 저번에 밥 먹은 학생이 이따 점심 먹으러 오겠다 하고 갔다고 전해달라." 했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학과 행정실로 가서 졸업상담을 받았다. 앞서 여러 차례 혼자서 졸업진단표를 보면서 몇 번이고 계산을 시도했었지만 여전히 헷갈리는 부분들이 있어서 그것들을 물어봤다. 어떤 걸 수강해야 되는지, 학점을 얼마나 더 채워야 하는지 명료하게 정리를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생각보다 어릴 때의 내가 알아서 야무지게 잘 들어놓아서 남은 네 학기 동안 꽤 여유롭게 해도 된다는 걸 알았다. 헤르미온느 식으로 21학점씩도 해야 될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18학점씩만 들어도 충분했다. 또 두 학기 정도는 15학점씩만 들어도 된다!    


<약속한 두 번째 식사 찾아가기>

<학과 행정실에 가서 졸업에 필요한 것을 물어보기>  


포스트잇 to do 리스트에서 꽤나 오랫동안 살아남은 두 녀석을 한 번에 지우는 순간이었다.


학과 행정실을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행정실은 대학생활에 대한 내 두려움의 표상인 장소였다. 내가 학교를 안 가고 집에 있는 초기 몇 년 동안 장기미복학으로 제적이니 퇴학이니 하면서 행정실에서 전화가 몇 차례 왔었다. 그때는 친구 전화, 학교 전화, 선생님 전화 등 내게 전화가 걸려 올 때마다 두렵고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당혹감을 느꼈었다. 그럴 때마다 발신자의 인내심이 그리 길지 않기를 바라면서 벨소리가 속히 끊어지기만을 방에서 숨죽여 기다리곤 했다. 그냥 모르겠다, 자퇴하겠다 하고 회피를 세게 했었다. 


가족들을 이때만 해도 내가 누구나 상상할 만한 적당한 방황을 겪고 학교로 돌아갈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자퇴가 아니라 제적으로 남겨놓으려고 했다. 그렇게 하려면 필요한 행정 수속을 하러 내가 서울로 직접 갔어야 했는데 그게 무서워서 할 수가 없었고 하기도 싫었다. 그리고 어차피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제적이든 자퇴든 아무 짝에도 상관이 없었다. 나한테 미래라는 건 당연히 없는 것이었다.


나를 설득할 수가 없자 아빠가 여러 차례 행정실 쪽과 연락을 하고 방법을 찾아 결과적으로 제적으로 남겨주었다. 여동생과 아빠가 학교 행정실로 가서 대신 서류 절차를 치러준 것이다. 이때가 몇 년도 쯤인지는 모르겠다. 후에 듣기로는 여동생은 행정실로 가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여동생이 대학생일 때도 '오빠랑 등교를 같이 하는 게 게 로망'이라며 히키코모로리로 사는 나에게 청파동에 같이 와서 살면 안 되냐고 이야기했었다. 새삼스럽게도 가족들에게 미안한 것들이 참 많네. 부끄럽다.


속죄의 마음으로 행정실 앞에서 졸업진단표를 들고 찍은 사진을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 무서워서 아빠랑 영경이가 대신 가줬던 행정실에 왔다 ]

[ 졸업할만한데? 생각보다 안 힘듦. 18학점씩 들으면 남음 오히려 ]


엄마가 답장을 달았다.


[ 행정실에 아빠도 몰래 전화해서 세세하게 물어보고 8학기인가 지나도 언제든 재입학 가능하다고 해서

제적동의 해준 거였어 ㅎㅎ ]


8학기는커녕 마지막 학기로부터 8년이 지났는데도 재입학이 되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어쨌든 동생이랑 형 누나들이 "고생했다.", "화이팅" 등 약간 서운할 정도로 담백한 응원을 해줬다. 그래도 나는 말풍선마다 하트를 달았다.



그러고 나서는 점심 약속 시간 12시가 되기 전 학교 우편 취급국으로 가서 짐을 싸 넣을 5호 상자를 두 개 사서 기숙사에 가져다 놓고 다시 연구실로 갔다. 교수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뭐 때문인지 잘 모르겠는데 어떤 우정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전 새로 뽑았다는 조교분과 셋이서 저번에 "다음엔 거기로 가자." 했던 식당을 말씀드려서 거기로 교수님 차를 타고 갔다.


"교수님이 운전하시는 차도 얻어 타보는 날이 오고 신기하네요. 감사합니다"

 내가 탄 조수석은 원래 큰 애가 타는 자리고, 조교가 앉은자리는 아내분 자리라는 말씀을 듣다가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교수님은 미소를 지으셨다. 낯간지러운 말을 하면 부담스럽게 여기거나 어떤 의도가 있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사랑과 헌신, 신뢰에 대한 마음이 열려있는 상태의 사람들에게는 솔직하게 전하는 게 서로를 더 행복하게 만든다. 그래서 요즘 인연을 맺은 어른들이 좋고 편하다. 내 좋은 감정과 지금의 행복감을 참지 않고 마음껏 실컷 양껏 드러내도 그저 귀여워해주시고 흐뭇해주시기 때문이다.   

교수님의 아버지가 고대에서 대학생활 하실 때도 다니셨다는 그 식당

식당은 내가 생명의 전화복지관을 걸어 다니던 동선 상에 있었다. 다음에 걷기를 좋아하시는 근처 청년 분과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격도 괜찮고 맛있었다. '이렇게 또 맛집탐방을 하고 있네.' 생각하면서 교수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말하다 보니 내 1월 한 달의 근황에 뭔가 많았다. 유치원 근로의 경험과 새로 사귄 친구, 자조모임, 며칠 전 다녀온 스키장 이야기까지.


"교수님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나는 잘 지냈지. 특별할 게 있나."


요즘 산을 다니기 때문에 오는 길에 있었던 천장산 둘레길도 한번 가보려고 한다고 말씀드리니 천장산이 왕이 제사를 지내던 산이고 이문동은 신성한 산을 지키는 문지기가 있던 곳이어서 이문동이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얘기도 듣게 됐다. 재밌었다. 나는 <알쓸신잡> 시리즈와 <과학을 보다> 같은 채널을 좋아하는데 뭔가 알쓸신잡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똑똑한 사람은 배울 게 많아서 재밌다. 거기 나오는 김상욱 교수와 심채경 박사가 있을까 봐 괜히 산책을 하면서 이과대 건물인 스페이스 21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그랬다.


순댓국을 먹으면서 조직행동론의 내용들이 너무 유용했고,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아서 다음 학기 수강신청 희망과목에 교수님의 <리더십 개발> 강의도 담아놨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핸드폰으로 뭘 잠깐 보시고 60명 정원에 희망 담기 해놓은 학생이 220명이라고 알려주셨다. 수강신청이 내일인데 잡을 수 있겠지..?


12월 말에 처음 식사를 했을 때도 자리를 뜰 때 "가자"라고 하시는 걸 적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가자'라고 하시면서 일어나셨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종종 와라."

"괜찮으세요?"

"그럼 내가 안된다고 하겠니."

"예, 한 번씩 찾아뵙겠습니다."


나는 인맥 쌓기를 하는 걸까? 아니다. 이제는 그런 내 무의식에 대한 의심도, 혼란도 완전히 사라졌다. 교수님은 마지막 강의에서 모두에게 밥 먹으러 연구실로 찾아오라고 하셨고 그래서 나는 먼저 손을 뻗어준 어른에게 응해서 갔다. 교수와 학생이 아니라 그저 신뢰 성향의 인간들끼리 만나서 별 것 아닌 일상 이야기 나누고, 기대고 받쳐주고 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그게 다른 부수적인 이득(정보 획득, 진로 상담) 보다 훨씬 큰 호혜성이다. 나는 그걸 원해서 교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연말에 밥 먹고 헤어질 때는 내가 먼저 악수를 청했었는데 이번엔 엘리베이터에서 나갈 때 교수님이 먼저 손을 내밀어주셨다. 손을 꽉 쥐어 악수를 해주는 느낌이 왠지 따뜻했다.


그리고 저번처럼 헤어지고 기숙사로 가는데 인생이 재밌어서 자꾸 웃음이 났다. 이렇게 재밌는 삶이라니. 처음 보는 조교한테 교수님이 "쟤는 너보다 9살 정도 많은데도 학생이야." 하고 말씀하실 때도 부끄럽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존감이라는 게 생겼나 드디어?  


< 차이 티 라 >

더 오래된 메모도 오늘 지웠다.

작년에 청년이음센터 활동을 하면서 만난 청년들과 카페를 갔을 때 한 청년이 좋아한다던 음료였다. 품절이라고 못 마셔서 아쉬워하던 모습에 호기심이 동했다. '향신료가 들어간 거라고? 무슨 맛일까?' 그 후로 마셔보려고 해도 커피빈의 차이 라떼도, 스타벅스의 차이 티 라도 연말연시 메뉴 리뉴얼 이슈로 계속 품절 상태였다.


그런데 오늘 점심 먹고 기분 좋게 초콜릿케이크나 하나 사 먹을까 싶어 스타벅스 앱을 보는데 웬걸 차이티라떼가 돌아왔다. 얼른 매장으로 향했다. 케이크 대신 차이 티 라떼를 먹기로 했다. '드디어 먹어보네.'

"차이 티 라떼(Chai Tea Latte)는 인도의 전통 차인 차이(Chai)를 이용하여 만든 라떼 음료로, 스파이시한 향과 달콤한 맛이 특징입니다.

차이는 홍차와 우유, 계피, 생강, 카르다몸 등의 향신료를 함께 끓여 만든 음료로,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즐겨 마시며, 차이 티 라떼는 이러한 차이에 우유를 더해 만든 음료입니다."


카르다몸은 또 뭐지.

'향신료의 여왕'이라는 카르다몸


차이 티 라떼를 처음 한 모금 마시고 생각했다.

'뱅쇼 라떼냐구 이거.' 

재밌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왠지 몸이 으슬으슬할 때 혹은 명절에 약과랑 먹으면 잘 어울릴 것 같은 맛이었다. 이 말은 라떼가 뱅쇼 같다거나 수정과 같아서 반감이 들었다는 뜻은 아니고, 놀리는 의도도 없다. 그냥 내 미천한 감상이 이랬다. 먹을 때 라떼에서 계피맛이랑은 상관없는 꽤 매운맛이 나는 것이 재밌었는데 그게 아마 카르다몸이라는 것 때문이었을까? 


'커피빈 차이 라떼는 맛이 어떻게 다를까?'

<차이 티 라떼>라는 글자 위를 굵은 펜으로 찌익 긋고 나니, 개운한 마음이 파도처럼 포말을 일으키며 일순 내 가슴을 시원하게 덮쳐왔지만 파도가 빠진 자리에는 이렇게 또 새로운 메모가 뒤따라 생겨났다. 그것도 지우게 되겠지.


다행히 이런 일들이 즐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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