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글

#회의

by 온호

오늘은 처음 한지 꽤 오래된 생각을 두 개 합쳐 얘기해볼까 싶다. 카프카 단편 「 이웃 마을 (Das nächste Dorf) 」을 읽다가 들었던 생각과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했던 생각 두 가지이다. 일단 이웃마을은 굉장히 짧은 단편이라 전문을 그대로 인용해 본다.


나의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인생이란 놀랍도록 짧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예컨대, 어떻게 한 젊은이가—불행한 우연의 사고들은 제외하더라도—행복하게 흘러가는 일상적인 삶의 시간에서조차 말을 타고 이웃마을에 가기에 빠듯하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어떻게 말을 타고 이웃마을에 갈 결심을 할 수 있는지, 나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이 아주 짧은 와중에도, 클로드나 제미나이에게 피드백을 맡긴다면 "문장이 너무 길고 복잡하다, 산만하다"는 식의 소리를 할 게 분명한 작가의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대시도 너무 많고, '좋은 문장' 구성을 위한 순서가 아니라 자기의 생각 구조나 순서를 최대한 그대로 문장으로 드러내기 위한 문체라고 느껴진다. 이 부분에서 어쩌다 '인생이 저렇게나 짧다는데 위대하고 훌륭한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아니라 제 일기를 읽고 있어도 괜찮나요 여러분'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선택은 내 몫이 아니지만 그래도 참견을 하자면 "감사하지만 굳이 여기까지 오시지 마라"인 거 같다.


도서관에서 책을 꽂다 보면 책장 공간이 모자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책을 '민다'. 책줄의 꼬리들을 조금 잘라서 아래 칸으로, 아래 칸으로. 그것도 모자라면 옆칸에서 또 옆칸으로. 수월할 때도 있지만 어떻게 하기가 힘들 때에 그러고 있다 보면 가끔은 '이따위 책들이 다 있을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하게 된다.

어느 유튜버가 소위 '양산형 에세이'에 대해 짚었던 적이 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모레의 내가 글피의 나에게, 괜찮아 정말 괜찮아 괜찮대두, 괜찮다고 말하지 마, 괜찮다고 말하지 말라고 말하지 마, 돈 모아라, 돈 모으지 말고 써라, 돈 쓰지 말고 모아라, 엄마가 딸에게, 엄마가 아들에게, 할머니가 손자에게 등등 비슷비슷한 제목들을 지으면서 짚었다. 풍자나 희화화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짚었다'라고 하고 있다. 풍자나 희화화라고 하면 전달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그런 의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얇은 에세이 책들이 빽빽하게 꽉 들어차있는 책장들 사이에 서서 그네들 책 등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그렇다. 그런데 무서운 점은 막상 그 책들 하나하나를 뽑아서 잠깐이라도 읽어보면 그 모두에 인생의 아주 중요한 진리와 깨달음, 삶의 정수가 담겨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기사에서 출판된 책들을 도서관에 의무로 비치해야 하는 법을 이용해 AI를 활용한 책으로 돈 버는 법 같은 것이 횡행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건 그 나름대로 문제지만 또 그런 법과 관련해서 그로 인해 꼭 AI활용이 아니더라도 양산형 출판물들이 얼마든지 범람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문제는 내가 쓰는 글은 그런 수준도 통과하지 못한 글이라는 거다. 그래서 '인생이 저렇게나 짧다는데 위대하고 훌륭한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아니라 제 일기를 읽고 있어도 괜찮나요 여러분'이다. 일단 나 스스로도 에세이나 인기도서 코너보다는 고전 쪽을 신뢰하는 편협한 독서관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그렇다.


오늘 찍어둔 사진이 없어 몇 주 전에 찍어둔 사진을 커버이미지로 쓴다. '수변 공원의 자전거도로 바닥에 심어져 있는 전등이 눈에 덮여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무슨 사진인지 직접 밝히지 않으면 사진이 뭘 찍은 건지도 모르고 의미도 모르고 지나갈 것이다. 내 글도 그냥 그런 제멋대로의 글이다. 의미는 나에게로 향해있다. 다만 저 사진을 보고 이런 의미를 쉽게 지어낼 수 있는 알량한 재주 써먹기를 좋아하는 재미로 글을 쓰는 것 같다.